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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대통령을 ‘갋는’ 사람들

입력
2016.10.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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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가뭄으로 금주령이 내려도 사간(司諫)만큼은 이를 지키지 않았다고 한다. 확실한 근거를 찾기 어려우나 잡문(雜文)인 대동야승(大東野乘)에 궁궐에서 술을 먹고 불콰한 사간이 사헌부 관리를 희롱하는 얘기가 전해지는 걸 보면 예외적 관리임을 보여 준다. 대사헌이 부하직원과 궁궐을 걷다가 낮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간을 일부러 피해가며 “저들이 아니면 누가 임금에게 입바른 소리를 하겠느냐”고 했다는 일화도 있다.

▦ 술에 얽힌 사간의 이야기가 여러 곳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직언하는 자의 호기’를 말하고자 하는 뜻이 담겼으리라 짐작된다. 연산군은 잘못을 말하는 그들의 소리가 듣기 싫어 사간원을 폐했고, 상소도 막았다. 사간은 면절정쟁(面折廷爭), 즉 임금과 대면하여 반대하고, 조정에 나아가 말로 다투는 게 일이다. 용비어천가도 신하들의 면절정쟁이 임금을 돕기 위함임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회고록에 노무현 대통령이 송 당시 청와대 안보실장에게 “왜 자꾸 대통령을 갋으려 합니까”라며 언성을 높이는 장면이 나온다. ‘갋다’는 따지고 괴롭힌다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다. 앙금을 남긴 채 끝난 2005년 경주회담 후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2차 한미 정상회담을 여러 차례 종용하는 송 실장을 불러 짜증을 낸 것이다. 강한 개성의 두 사람은 정책 현안을 놓고 여러 차례 부딪쳤다. 이렇게 아랫사람과의 논쟁을 마다 않던 노 대통령도 친인척과 측근 비리를 제대로 단속하지 못했다. 입바른 부하를 두지 못했던지, 귀가 밝지 못했던 탓인지 그게 원인이 돼 결국 비극적 선택을 했다.

▦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청와대의 기업 팔목 비틀기 등 온갖 의혹이 불거져 나오는 미르ㆍK스포츠 재단 문제를 거론했지만 “기업들이 뜻을 모아 만든 것”이라 한 걸 보면 정치공세라는 입장을 여전히 거두지 않는 듯하다. 미르 재단 의혹의 핵심 인물이자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오르내리는 ‘최순실’이라는 이름은 들지도 않았다.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의 말처럼 대통령과 그냥 ‘아는 사이’정도라면 문화ㆍ체육ㆍ학계의 여러 비정상적 일들이 왜 최씨와 얽혀 일어났는지 궁금하다. 민정수석을 비롯한 청와대 비서실이 면절정쟁하지 못한 탓인지, 야당과 언론이 ‘갋는’ 것인지는 시간이 말해 줄 터이다.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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