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나라 지금 말 한 마리 때문에 난리라며?” 여기는 라오스의 루앙프라방. 고 백남기 농부의 영결식도, 대국민 담화도 다른 세상일인 냥 제쳐놓고 여행을 즐겼건만 중국인에게 뒤통수를 맞을 줄이야. 함께 있던 스위스인과 네덜란드인이 무슨 소리냐고 묻는다. 우리는 8인실 도미토리에서 우연히 만나 저녁을 같이 먹던 중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하도 낄낄대는 바람에 내가 황당한 해외토픽뉴스를 소개하는 듯했다. 당황한 나는 급 정색하며 진지하게 답했다. “글쎄 말 한 마리가 아니고요, 재단을 통해 천문학적 규모의 돈을 모으고, 사적으로 국가기밀이 누출되고, 어쩌고저쩌고.” 결국 웃자고 한 말에 다큐멘터리로 달려든 나를 보며 다음처럼 분위기가 무마되었다. “얘가 자기네 나라를 참 사랑하나 봐, 하하”
이렇게 나라 꼴을 쪽 팔리게 만든 그들을 내 어찌 지지하랴. 그럼에도 너무나 쉽게 이야기되는 ‘여자라서 그래’라는 비난을 넘길 수 없다. 한 진보 정치인은 ‘저잣거리 아녀자’에게 권력이 넘어갔다고 비판했고, 그 발언은 ‘사이다’라는 칭송을 얻었다. 아녀자란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와 여자라는 뜻으로, 알다시피 ‘아남자’란 단어는 없다. 내가 겪은 바 소견이 금붕어 똥보다 가늘고 행실이 돼먹지 못한 남자 정치인들이 차고 넘치지만 그들에게 ‘남자라서 그래’라는 비난이 쏟아진 적은 없다. 남자들은 개인의 주체성을 가진 다양한 존재들로 상정되기 때문에 한 사람으로 대표되지 않는다. 그런데 여성들은 뭘 하든 간에 ‘여성’으로 호명된다. 입에 담기 민망하지만 인터넷에는 ‘닭년’ ‘강남 아줌마’ ‘미친 년’이라는 표현이 난무하며, 여자들이 나라를 망쳤다는 결론으로 치닫는다. 4대강을 ‘녹차라테’로 말아먹고 뜬금없는 광물 외교와 한식 세계화로 국고를 바닥낸 이명박 전 대통령만 봐도 남자가 나라를 망친 일은 백만 개쯤 있는데 말이다. 게다가 이 마당에 청와대 보톡스 시술과 최순실 프라다 신발이 그렇게 ‘중허단’ 말인가. ‘김치녀’와 ‘된장녀’를 고스란히 정치에 투사해 그들을 조롱할 시간에 이런 사회를 용납한 우리 자신을 되돌아봐야 한다.
며칠 전 전국 대학 곳곳에서 시국선언이 이어지던 중 일부 인터넷 유저들이 ‘지잡대(지방에 소재하는 잡스러운 대학)’ 운운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들은 “지잡대 애들은 자기 인생이 시국선언”이라니 “시국선언이 뭔지 알기는 하냐”는 둥 저질스럽게 굴었다. 이에 한 배재대 학생이 “서울대생의 1표와 배재대생의 1표는 모두 값진 1표이고, 내 옆의 가족들 안위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싶지 않다면 행동해야 한다”는 말로 응했다. 아, 나는 이런 건강하고 멋진 ‘멘탈’에 위로받았다. 그리고 박 대통령의 하야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약자들을 ‘개ㆍ돼지’로 여기고 ‘지잡대’로 깔보고 ‘여성 혐오’로 죽이는 사회를 바꿔내는 것임을 깨달았다. 개개의 인간을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는 일상의 민주주의는 정치의 민주화보다 훨씬 큰 과제다.
루앙프라방에서 만난 스위스인은 자국에서 응급대원으로 일하는데, 좋은 일 한다는 칭찬에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든 존경받을 만한 고마운 존재가 아니냐”고 답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서 살고 싶다.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옆에 있던 중국인이 “너희들은 권력자를 직접 뽑고 끌어내릴 수라도 있지, 우리는 누굴 뽑아본 적조차 없다”라고 허탈해했다. 그러니 이 시간을 한 명의 꼭두각시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와 일상을 바꾸는 일로 전환할 수 있기를. 여성학자 정희진 씨는 일본 사회학자 도미야마 이치로(富山一郞)의 말을 따 “저항이란, 투쟁을 타자에게 떠넘기지 않고 지금 자신의 일상에서 실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의 저항이 정치적인 사안에서 멈추지 않고 일상으로 흘러넘칠 때 진정한 민주화가 오지 않을까.
고금숙 여성환경연대 환경건강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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