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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마지막 집

입력
2016.11.10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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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마지막 집은 어떤 집일까. 완공을 앞둔 주택의 건축주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 노부부가 산책길에 공사 중인 그 집에 들러 이것저것 묻고 갔다고 했다. 새로운 건축주를 만나게 될지 모르니까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미다. 내가 설계한 집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니 어깨에 날개가 돋친 듯 기분이 두둥실 떠올랐다.

이틀 후 그 노부부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용은 간단했다. 노부부는 10년 전에 가족들이 함께 살 집을 지었다. 그리고 그사이, 장성한 자식들이 모두 결혼해서 모두 나갔다. 이제 두 사람이 살기에 너무 큰 집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지금 집을 처분하고 바로 앞에 있는 조그만 땅에 부부가 살기에 알맞은 집을 짓고 싶다는 것이다. 다음날 방문해보니 노부부의 집은 노출 콘크리트로 잘 지은 집이었다. 건축가에게 의뢰해서 지었다는 그 집에서 당시 유행하던 건축언어들을 읽을 수 있었다. 멋을 많이 부린 건축물이었다.

이 집에 살면서 좋았던 부분과 불편했던 부분으로 말문을 열면서 앞으로 지을 집으로 이야기를 넘겼다. “이번에 짓는 집은 죽을 때까지 살게 될 집이겠지요.” 흘러가듯 나온 이야기지만 ‘이분들의 마지막 집을 짓게 되겠구나’라고 생각하니 상당한 무게로 다가왔다.

대부분의 건축주는 ‘첫 집’을 의뢰하곤 한다. 사회생활을 하며 열심히 모은 자금으로 땅을 구입하고 일부는 대출을 받는다. 그러고도 과연 집을 짓는 게 옳은가, 오랜 고민 끝에 내 집짓기를 실행하려고 건축가를 만나러 온다. 집에 대한 생각이 막연하기만 한 처음이 지나고 실제 형태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면 모든 게 실감 나게 다가온다. 공사가 끝나고 입주하는 날 감개무량함은 이 집과 관련된 모든 사람의 것이 된다.

하지만, 평생 내 집을 지어보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어렵사리 첫 집을 짓고 나서 두 번째 집을 계획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좋은 기억을 오랫동안 차곡차곡 쌓으며 이 집이 가족의 마지막 집이 되길 기대하는 경우가 더 많다. 꿈에 부풀어 계획을 세우고 그 어느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 전전긍긍하는 게 바로 첫 집이다. 이 집에서 맞이할 길고 긴 미래가 뜨겁고 아름답다. 그런데, 이번 의뢰는 마지막 집이었다. 많은 계획도, 길고 긴 가족의 이야기도 덜어내고, 두 사람이 여생을 보낼 담담한 집.

첫 미팅 이후로 여러 가지 생각이 복잡하게 들끓었다. 과연 삶의 마지막 집은 어떤 공간이어야 할까.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참 어렵다. 해답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편리하면서도 외부 자연을 최대한 끌어들이는 집을 염두에 두고 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도 기능적으로 배치된 안을 몇 가지 정리했다. 나중에 몸이 불편해질 때를 대비해서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하는 것도 생각해보았다. 계단이나 동선 등 시니어를 위한 주택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몇 번 회의를 거치면서 얻은 결론은 이렇다. 마지막 집이라고 해서 첫 집과 다르지 않다. 부부가 원하는 집에 대해 충분히 듣고 또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내며 선과 모퉁이를 세심하게 더듬다 보니 어느새 건축주 부부와 나는 신이 나서 서로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마구 던지고 있지 않은가. 이 부부도 다른 젊은 건축주들과 마찬가지로 재미난 공간, 색다른 건축 아이디어에 더 깊은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미팅 후엔 두 분이 많은 대화를 나누며 다음번에 나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한껏 풍성하게 준비해두곤 했다. 오히려 새로운 시도에 더 과감하게 대응했다. ‘나이가 많아서’ ‘몸이 불편해서’는 중요한 지점이 되지 않았다.

시니어 주택이라는 것도 지독한 편견일지 모른다. 무언가 자신을 위해 새 공간을 만들어가는 경험 자체가 중요하다. 처음 짓는 집처럼 그저 최선을 다해 상상하고 문제들을 풀어나갈 뿐이다. 마지막도 처음처럼….

정구원 트임건축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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