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외식은 동네 맛집이 최고다. 이 동네에 산 지 벌써 20년, 동네 맛집 리스트가 차곡차곡 늘어간다. 식구 모두 오래된 맛집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그 리스트를 수정해야 할 일이 생겼다. 늘 리스트의 상위에 있던 ‘막국수’ 식당이 문을 닫은 것이다. 안 그래도 한번 가야지 하던 차였는데... 아뿔사! 늦어버린 것이다. 막국수 식당 자리는 주택 재건축이 한창이었다. 동네 일대가 건물을 철거하는 중이었다. 식당 건물은 흔적도 없고 어디로 이전했다는 현수막이나 안내문도 없다. 깊은 상실감. 또 어디서 그런 맛을 찾는단 말인가. 그 비빔막국수의 오묘한 맛을...
떠나는 것이 있으면 돌아오는 것도 있는 법. 이 허탈한 마음을 채워줄 귀환자의 소식이 들린다. 10대 시절 최고의 공간, 세운상가가 돌아온단다! 끊어진 다리를 연결하고 비어있던 점포에 벤처회사들이 입주한단다. 점점 쇄락해 가던 그곳이 북적거리는 상상을 해보니 집 나간 강아지가 돌아온 듯 기쁜 마음이다. 그 이유는 내 한 시절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세운상가에 갔을 때가 언제였더라. 초등학교 때 아버지를 따라 ‘석유곤로’를 사러 갔다. 사는 데 필요한 물건들은 모두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복잡한 길, 많은 물건, 많아도 너무 많은 가게들... 세운상가의 공간이 신기한 보물상자처럼 보여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좀 더 커서는 세운상가가 훨씬 더 가까워졌다. 당시 내 또래 서울 사람에게 세운상가는 ‘성지’나 다름없었다. 헤비메탈에 심취한 인간들이라면 ‘빽판 (정식 레코드판의 불법 복사판)’ 사러 반드시 가야 할 곳이었기 때문이다. 레코드판을 찾으러 세운상가를 걷다 보면 ‘학생 좋은 거 있어’ 라며 접근하는 아저씨들에게 팔을 잡히기 일쑤였다. 야한 잡지나 비디오 같은 것들인데, 그에 대한 소문이 학생들 사이엔 또 무성했다. 그런 곳에 끌려갔다가 돈만 빼앗겼다는 친구들 무용담 듣다 보니 호기심보다 도망가야겠다는 마음이 더 앞섰던 순진한 기억도 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학생들만 유독 그 아저씨들 손에 잡히곤 했다.
고등학교 때 ‘소니 워크맨’을 사고 싶어 시간이 날 때마다 골목골목을 돌아다닌 기억도 있다. 조그만 유리선반에 각양각색의 워크맨이 나란히 놓여있었다. 소형 라디오와 카세트들은 정교하기 이를 데 없어 보였다. 매끈한 모서리와 뚜껑을 여닫을 때 나는 찰칵 소리, 그리고 섬세하게 박혀있는 상표까지 다 좋았다. 가격이 넘사벽이라 선뜻 사지 못하고 군침만 흘렸다. 친구 한 놈이 워크맨을 사러 간다 하면 우르르 친구들 모두 따라 나섰다. 유리 진열장에서 물건이 꺼내져 내 앞에 놓일 때 심장이 두근거리다 못해 망가지는 것 같았다. 정말이지 ‘세운상가’ 는 뭔가 좋은 것 (앞에서의 의미와는 다르지만)이 있는 설렘의 장소였다.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거길 들락날락했다. 빽판, 워크맨, 헤드폰, 충전지, 공테이프, 음악테이프, 카세트테이프 청소도구, CD... 거기서 사온 물건들로 내 세상이 채워졌다. 그러다 용산전자상가가 등장했다. 결정적으로 세운상가에서 용산으로 발걸음을 돌리게 된 것은 ‘컴퓨터’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컴퓨터가 내 방에 들어오면서 세상은 달라졌다. 컴퓨터는 용산이지. 그렇게 세운상가는 멀어졌다.
건축가가 된 후에도 세운상가를 간다. 공사 현장에 쓰는 전기나, 설비용품 등을 보러 종종 가는데, 일은 일이라 옛날처럼 설레지는 않는다. 그러나 문득문득 추억의 문을 여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런데... ‘다시 세운 상가’가 돌아온단다. 그저 그런 상가가 될지, 사람들에게 떨림과 즐거움을 주는 장소가 될지 아직은 모르겠다. 그래도 지켜보고 싶다. 내 한 시절이 그곳에 있으니. 돌아온 거 환영한다!
정구원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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