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이 끝났다. 동계 올림픽에 이렇게 열광한 건 처음이었다. 금메달이 아니면 안 된다는 1등 만능주의가 아니어서였다. 스포츠를 ‘즐긴다’는 느낌을 주는 선수들을 많이 만났다. 경쟁상대인 선수들조차도 경기 후에 서로 축하하고 위로하는 모습에 이게 진짜 스포츠라는 생각도 했다. 심각한 애국심으로 똘똘 뭉쳤던 과거의 국가대표와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스포츠가 주는 순수한 열기와 카타르시스에 열광했던 2주였다.
평창올림픽을 전후로 ‘진천선수촌’이 자주 뉴스에 등장했다. 선수촌하면 태릉인데 그 사이 선수촌이 옮겨갔단다. 그럼 태릉선수촌은 어떻게 되나? ‘국가대표’와 나란히 놓일 만큼 상징적인 장소가 아닌가? 사실, 말 그대로 국가대표가 되고자 하는 선수들만 출입하는 곳이니 나와는 큰 상관이 없는 장소지만 그래도 궁금해서 검색을 해본다. 그런데, 이럴 수가! 태릉선수촌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니!
서울 북동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태릉의 기억이 분명 있을 것이다. 거의 매년 소풍이나 사생대회하면 태릉이었다. 선수촌이 아니라 ‘태릉 푸른동산’에 대한 즐거운 기억 말이다. 수영장, 놀이시설, 동물원도 있었다. 그리고 ‘사격장’이 있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언젠가는 한번은 만지게 된다는 총을 처음 잡아본 것이 초등학교 때 태릉 푸른동산의 사격장에서였다. 비록 공기총이었지만 ‘무기’를 들고 표적을 향해 총알을 발사하던 느낌이 생생하다. 표적 확인을 위해 도르래를 돌리면 표적지가 점점 다가오는데, 이건 성적표를 받아 펼쳐볼 때와 같았다. 두근두근두근...
나는 태릉이 좋았다. 사생대회를 태릉으로 갔기 때문이다. 그림 그리기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나에게 사생대회는 1년 중 가장 고대하던 행사였다. 친구들은 다들 대충 그림을 그리고 뛰어 놀기 바빴지만 나는 맘에 드는 장소를 고르고 골라 시간이 다 될 때까지 풍경을 응시하며 열심히 그렸다. 나무와 햇빛, 하늘의 어우러짐이 참 좋았다. 그때 총소리가 울렸다. 태릉 푸른동산에는 아주 크고 넓은 클레이 사격장이 있어서 그림 그리는 내내 총소리를 들었다. 하늘을 올려다 보면 날아가는 클레이 표적이 보였다. 그 너머에 태릉선수촌이 있었다.
태릉이 조선왕릉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그래서 태릉의 경관을 해치는 선수촌을 없애야 하는 상황이다. 선수촌 시설은 진천으로 옮겨졌으니 태릉선수촌의 역할은 끝났다. 그런데 1960년대 지어져 50년 이상 존재해온 건물을 놓고 보존이냐 철거냐 다툰다. 7동의 건물과 운동장 등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해 보존하고 활용하자는 목소리도 있고 원래부터 왕릉 공간인 데다 군사독재시절 왕릉 권역을 훼손해 선수촌을 세웠기 때문에 왕릉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태릉선수촌은 스포츠 엘리트를 위한 시설이다. 보통 시민은 가본 적도 없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무슨 건물이 있는지조차 모른다. 매스컴을 통해 국가대표들이 열심히 훈련하는 모습을 보았을 뿐이다. 선수촌을 거쳐 간 수많은 국가대표들에게만 특별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건물의 보존 논쟁에 일반인이 공감할 지점은 크지 않다. 그렇다고 왕릉의 기억이 더 가깝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우리를 울고 웃게 하며 감동을 준 국가대표들에 대한 기억은 우리 모두에게 있을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용기와 힘과 도전을 보여주는 젊은 영웅들이다. 그렇다면 그들을 탄생시킨 장소의 이야기도 충분히 가치가 있지 않을까?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가까운 과거를 훼손하지 말고 지금 우리에게 소중한 기억을 단단하게 해주는 장소로 남길 수는 없을까? 스포츠 엘리트만을 위해 존재하던 태릉선수촌이 보통 사람들을 위한 스포츠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길 기대해본다.
정구원 건축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