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삶과 문화] 구맹주산(狗猛酒酸), 포악한 측근은 없는가.

입력
2018.03.26 14:32
31면
0 0

중소기업 CEO인 김 사장은, 사람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인재 발굴과 영입에 최선을 다한다. 다양한 루트로 인재들을 소개받으며, 능력이 뛰어난 인재는 삼고초려를 마다하지 않고 회사로 데려오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영입된 인재가 회사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떠나버리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는 점이다. 김 사장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중소기업 치고는 대우도 좋은 편이고 회사의 미래가치도 높다고 자부하는데 말이다. 왜 김 사장 주위에는 좋은 인재가 오지 않거나 오더라도 오래 견디지 못하는 것일까? 나중에 확인해 보니 그 문제의 핵심은 김 사장의 측근들이었다.

군주를 위한 충언을 담은 중국의 대표적 제왕학 저술인 ‘한비자’ 외저설 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춘추시대 송(宋) 나라에 술 장사꾼이 있었다. 그는 술 빚는 재주가 좋고 친절하며 정직하게 장사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술이 잘 팔리지 않았다. 술이 팔리지 않으니 창고 술독에 있는 술은 발효되어 점점 신맛이 났다. 장사꾼은 이런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갔다. 고민을 거듭하던 장사꾼은 지혜로운 마을 어른 양천을 찾아가 술이 안 팔리는 이유에 대해 물어 보았다. 그러자 양천은 그 장사꾼에게 이렇게 되물었다.

“혹시 자네 집의 개가 사나운가?” 술을 파는 자가 “그런 것 같습니다.”라고 답하자 양천이 말했다. “보통 어른들은 아이를 시켜 술을 사오라고 하지. 그런데 아이들이 자네 가게에 들어가려 하다가 그 사나운 개를 보고는 겁에 질려 들어가지 못하고 결국 딴 집에 가서 술을 사는 것 같구먼. 자네 개가 사나워서 결국 술이 팔리지 않고 그로 인해 술은 시어가는 것이네. 문제는 바로 자네의 그 사나운 개일세.”

이 이야기에서 유래한 사자 성어가 바로 구맹주산(狗猛酒酸). 사나운 개 때문에 술이 시어진다는 뜻이다. 한비자는 이 이야기를 통해 군주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 했던 것일까.

한비자는 나라의 간신배를 사나운 개에 비유하여, 군주가 아무리 어진 신하를 두려 해도 조정에 간신배가 들끓으면 어진 신하는 그 견제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군주 곁을 떠날 수밖에 없음을 설명하려 한 것이다. 어진 이가 군주를 도와 현명한 정책을 내놓으려 해도 마치 사나운 개와도 같은 간신배들이 군주를 가리고 현자(賢者)를 물어뜯는다면 그 누가 군주 곁에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

한비자라는 텍스트에 대해서 ‘공포정치’, ‘술수정치’를 장려한 책으로 잘못 오해되는 측면이 있다. 그리고 인간성에 대해 비관적인 시선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금서(禁書)로 취급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판단을 받는 한비자는 다소 억울할 것이리라. 왜냐하면 한비자가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 대상은 군주를 둘러싼 권신(權臣, 힘 있는 신하)들이었기 때문이다. 한비자는 그의 저서를 통해 군주에게 “권신을 경계해야 합니다. 권신들이 권한을 남용하게 되면 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은 백성들입니다. 그러니 군주께서는 매의 눈으로 그들을 살피시고 장악하십시오!”라는 충언을 하고 있다.

사리판단이 밝지 못한 군주를 암군(暗君) 또는 혼군(昏君)이라 한다. 필부(匹夫)가 사리판단이 밝지 못하다면 본인 혼자 피해를 입고 말겠지만 한 나라의 군주는 사리판단이 밝고 명철해야 한다. 한비자는 군주 본인의 밝음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군주를 보좌하는 참모들의 성향에 대해서도 군주는 신경을 써야 함을 구맹주산의 이야기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리더는 자신의 선의(善意)만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주요 참모들의 성향을 파악하여, 혹시나 자신이 사람의 장막에 둘러싸여 있지는 않은지, 사나운 그들로 인해 훌륭한 인재들이 조직을 떠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체크해 보아야 할 것이다.

조우성 변호사ㆍ기업분쟁연구소 소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