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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김무성의 유산

입력
2018.06.18 18:30
수정
2018.06.19 09:5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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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총선 직전인 2016년 3월24일 5개 지역구 후보자에 대한 공천장에 도장을 찍지 않겠다고 선언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부산 영도구 자신의 선거사무실 앞 영도대교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뉴시스)
20대 총선 직전인 2016년 3월24일 5개 지역구 후보자에 대한 공천장에 도장을 찍지 않겠다고 선언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부산 영도구 자신의 선거사무실 앞 영도대교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뉴시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한 장의 사진이 있다. 2016년 3월24일 새누리당 대표였던 김무성 의원이 홀로 부산 영도다리 난간에 기대 초췌한 얼굴로 바다를 내려다보던 장면 말이다. 4ㆍ13 총선을 앞두고 '박근혜 청와대'가 내세운 이한구 공천위원장이 김 대표를 모욕하며 '막장 공천'을 일삼자 후보등록 마감일을 하루 앞두고 돌연 당무를 보이콧하며 낙향했던 때의 일이다. 한때 후보등록에 필요한 당대표 직인을 들고 갔다고 잘못 알려져 '옥새파동'으로 불렸던 이 일은 김 대표의 맥빠진 회군으로 해프닝에 그쳤다.

▦ 김 대표에게는 '무성대장(무대)'이란 별명과 함께 '30시간 법칙'이란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별명은 호방하고 선굵은 그를 따르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고, 꼬리표는 주요 고비 때 내린 결단이 30시간을 버티지 못한다는 비아냥이다. 앞의 해프닝도 한 사례지만 그는 유독 박근혜 앞에선 늘 작아져 '상도동(YS) 우등생'다운 사즉생의 결기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 그가 최순실게이트가 점입가경을 치닫던 2016년 11월 박근혜 탄핵을 앞장서 주장하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것은 의외였다. 여전히 유력 여권 대선후보 선두를 다툴 때였으니.

▦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버거운 결단을 한 것일까. 이후 행보는 오락가락, 갈팡질팡 그 자체였다. 보수개혁을 앞세워 탈당한 후 망설이는 유승민을 닥달해 바른정당을 창당한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반기문을 보수통합 대선후보로 생각했던 그의 그림이 깨지자 '죽음의 계곡'을 함께 건너기로 했던 유승민과의 거리는 멀어졌고 그도 길을 잃었다. 이 틈을 홍준표가 파고들자 그는 "보수가 통합해 문재인 정부의 좌파 포퓰리즘 폭주를 막는 게 우선"이라며 패잔병처럼 한국당으로 돌아갔다. 30시간이 1년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 배신의 굴레를 무릅쓰며 복당한 후 "지은 죄가 많아서···"라며 몸을 낮춰왔던 김 의원은 보수대통합의 명분마저 망각한 채 시대착오적인 홍준표의 나팔수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가 엊그제 한국당 의원총회에서 "새로운 보수정당의 재건을 위해 나부터 내려놓겠다"며 차기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희생과 책임이야말로 보수의 최대가치"라고도 했다. 하지만 그가 지은 죄는 퇴진이나 한탄으로 씻을 만큼 작지 않다. 땅 깊이 묻힌 밀알이 되어 썩겠다는 각오와 '알바로 의원하는' 좀비들을 몰아내는 과제는 그에게 남겨진 마지막 책무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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