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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수명의 논리

입력
2018.09.06 10:14
수정
2018.09.06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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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주는 늘 어려운 질문을 한다. 이번에도 심각하게 질문했다. “이 건물이 얼마나 갈까요? 그러니까 건물의 수명 말이에요.” 누군가 나에게 ‘넌 몇 살까지 살 수 있을 것 같니’라고 물어보는 것처럼 아찔해진다. 누군들 자신의 수명을 알까? 건물도 마찬가지인 것을. 어떤 건축재료 회사들은 ‘50년 보장’ ‘반영구적’이라며 제품의 우수성을 홍보하는데, 실제 사용된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반영구적인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인명재천(人命在天)이라면 건명재인, 즉 건축의 수명은 인간에 달렸다는 것.

사무실을 옮겼다. 이번엔 1920년대 후반에 지어진 일본식 목조주택이다. 과거에도 개발회사가 있어서 일본인 주택업자가 큰 토지를 매입해서 택지 조성을 한 후 다량의 주택을 지어서 분양했던 곳이다. 소위 ‘문화주택’으로 불렸던 새로운 형식의 주택이었기에 큰 회사의 고위직이나 국책회사에 근무하는 직원, 교수 등이 살았다고 한다. 최신 디자인이라지만 결국 목조가옥이다. 광복, 그리고 전쟁 이후에는 인구가 크게 늘어나 서울에서 유난히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던 동네가 되었다. 그래서 이 동네에는 특이하게도 집을 반으로 나눠 2가구가 사는 집들이 종종 있다.

이 집도 그렇게 여러 사람을 거쳤고 한참 빈집으로 남아 있기도 했지만 오늘까지 살아남았다. 살림집에서 사무실로 용도가 바뀌었지만 목조라는 연약한 구조로 90년 가까운 세월을 견딘 셈이다. 그동안 고친 곳도 있고 상한 곳도 있지만, 급한 보수도 하고 요모조모 고치고 보니 복고 분위기가 나는 그럴싸한 공간으로 바뀌었다. 현재 이 동네는 재개발지역이다. 집의 입장에서 보자면 시한부 선고를 받은 셈이다. 중요한 수술을 몇 군데 했지만 생명을 위협하는 시한부의 시계는 계속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이 집이 백수를 누리는 것인데, 하루빨리 재개발이 진행되길 바라는 집주인에겐 청천벽력이리라. 그러므로 누군가 목조주택의 수명을 묻는다면 ‘제가 쓰고 있는 목조주택은 90년이 가까워오는데 멀쩡합니다. 100년도 문제없을 듯합니다’라고 답할 것이다.

사람이나 집이나 나이에 따라 위험신호가 따라온다. 고지혈증도 걱정되고 허리 디스크도 염려되는 나처럼, 내가 사는 아파트도 혈관청소에 들어갔다. 1기 신도시인 부천 중동은 대부분의 아파트가 20년을 훌쩍 넘겼다. 그러고 보니 건물의 혈관이라 할 수 있는 온수, 급수 배관을 교체하는 ‘대수술’ 에 들어갔다. 막히고 녹슨 관들을 없애고 녹에 강한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로 바꾸고 있다. 건물의 외관도 정기적으로 관리한다. 보톡스를 맞고 염색도 하듯이 도색도 하고 동네 특유의 카툰들도 그려서 경관을 좋게 한다. 나무들도 제법 자라서 여유로운 중년의 모습 같다. 이 아파트는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100년이 될 지. 30년이 될지 알 수 없다. 건물의 수명을 단지 ‘안전’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100년 이상 살아남겠지만, 개발이익이나 상품가치로만 본다면 고작 몇 년 후에 폐기될지도 모른다

건물의 수명에 대한 건축주의 질문은 결국 ‘상품성’이었을 것이다. 돈으로 환산될 수 있는 ‘상품성’이 유지되는 기간을 물었던 것이다. 집이 거주의 개념에서 교환가치의 수단으로 바뀌면서 수명은 ‘상품성’과 긴밀하게 되었다. 가느다란 목재로 만들어진 현재의 사무실도 수리하고 보완하면서 100년에 가까운 세월을 지나왔는데,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이루어진 아파트의 수명을 따져서 무엇할까? 무엇으로 지어졌든지 애정을 가지고 고치고 다듬는다면 내 인생과 맞먹을 만큼 충분히 오래갈 것이고, 상품성에만 주목한다면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시한부 인생이 될 것이고...

정구원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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