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치에게는 말 못할 슬픈 사연이 있다. 참치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한 차례도 멈추지 않고 헤엄을 친다. 잠시 서서 친구와 얘기하거나 바다 풍경을 감상할 수 없다. 멈추는 순간 바닷속으로 가라앉는다. 아가미를 여닫는 기능이 없어 헤엄을 멈추는 순간 산소를 공급할 수 없어 죽는 것이다. 그래서 참치는 쉬고 싶거나 몸이 아파도 달리고 또 달려야 한다.
사람은 엄청난 행운과 축복을 지니고 태어났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 없이 평생 달려야만 하는 참치에 비하면 사람은 의지에 따라 누울 수도, 앉을 수도, 걸을 수도, 달릴 수도 있다. 달리다 숨이 차거나 힘이 들면 잠시 멈추어 쉬어 갈 수도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달리기만 한다. 더 많이 모으고, 더 많이 얻으려고 달리고 또 달린다. 남들이 달리니까 얼떨결에 자기도 달린다.
아프리카에서는 매일 아침 가젤이 잠에서 깨어난다. 가젤은 사자보다 빨리 달리지 못하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온 힘을 다해 달린다. 아프리카에서는 매일 아침 사자가 잠에서 깨어난다. 사자는 가젤보다 빠르지 못하면 굶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온 힘을 다해 달린다. 사자든 가젤이든 마찬가지다. 해가 뜨면 무조건 뛰어야 한다.
TV 다큐멘터리 “동물의 왕국”을 보면, 동물들의 세계는 처절하다. 약육강식의 세계가 때로는 눈물겹다. 오랜 세월 동안 치타는 가젤을 잘 잡을 수 있도록 진화해 왔다. 가젤 또한 나름대로 치타로부터 더 잘 피할 수 있도록 진화해 왔다. 이와 같이 쫓고 쫓기는 경쟁을 “붉은 여왕의 효과(Red Queen Effect)”라 한다. 어떤 대상이 변화하더라도 주변 환경이나 경쟁대상이 더 빠르게 변함에 따라 상대적으로 뒤처지게 되는 원리를 일컫는 말이다.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 In Wonderland)”에서 앨리스가 붉은 여왕을 만나 그녀에게 손목을 붙잡힌 채 정신 없이 시골길을 달리는 대목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빨리 달려도 제자리걸음을 할 뿐이다. 의아해하는 앨리스에게 여왕은 “이곳에서는 있는 힘을 다해 달려야만 제자리에 머물 수 있다”고 설명한다.
현대인들은 힘껏 달려야 겨우 제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붉은 여왕의 덫에 걸려 들었다. 앨리스처럼 붉은 여왕의 손을 잡고 달리고 있다. 행복을 향하여 욕망의 쳇바퀴를 죽어라고 돌려보지만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고 있다. 불만족은 더 커지고 불평과 불안으로 소진될 뿐, 행복은 점점 더 멀어져 가고 있다.
욕심은 버려야 채워진다. 주먹을 꽉 쥐면 그 안에 아무 것도 없지만, 주먹을 펴면 그 안에 모든 것이 있다. 좋은 것을 담으려면 먼저 그릇을 비워야 한다. 사자와 가젤처럼 평생 전력질주만 하면서 살 수는 없는 거다. 천천히 달리고 혹여 잠시나마 멈출 수 있다면 그 때야말로 행복한 시간이다. 멈추어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 별을 보려면 등불을 꺼두어야 한다.
너무 내달리려고만 하지 말고, 잠시 멈추어라. 그리고 천천히 걸어라. 천천히 걸으면, 예쁜 들꽃이 보이고 새소리가 들리고 향긋한 풀냄새가 코끝을 스치게 된다. 많은 것을 성취하기 위해 반드시 미치도록 바쁘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얼마나 일을 했느냐 보다는 어떻게 일을 했느냐가 더 중요하다. 깨어 있는 삶을 향한 첫걸음은 마음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삶을 즐기려면 오히려 느려져야 한다. 마음의 속도를 늦추고 잠시 멈추어라.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어라. 지금의 여기까지 온 당신이 얼마나 대견한가? 지금 당신의 마음에 위로를 건네라. “수고 했어, 그리고 이젠 좀 쉬어.”
윤경 법무법인 더리드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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