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주인은 누구일까? 건축주만의 것일까? 설계 의뢰를 받고 가보면 여러 가지 풍경들이 나를 맞는다. 주변에 집도 없고 빈 땅만 있는 경우라면 문제될 것도 없어 순탄하게 설계를 진행하면 된다. 그러나 그 땅에 멋진 나무나 바위가 있거나 주변에 집들이 모여 있다면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이 나무와 바위를 없애는 것이 옳을까? 신축이라고 하면 빈 땅에 집을 짓는다고 쉽게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특히 울창한 나무들이 있다면 고민은 깊어진다.
충북 음성에 짓고 있는 이 집은 나무가 많았다. 지어질 집의 위치가 남쪽이 좋다고 판단해서 자그마한 나무 몇 그루를 옮겨심기로 했다. 그때가 겨울이어서 가지도 앙상하고 나무도 작아 보여 그렇게 결정했다. 건축주의 부모님이 그곳에 있는 단풍나무를 어여쁘게 여겼기에 나무 위치를 모두 측량하여 최소로 옮겨도 되는 위치를 잡았다. 사랑하는 단풍나무는 식당의 창으로 보이도록 설계에 반영했다.
공사를 시작할 즈음 건축주가 급히 연락을 해왔다. 나무 때문이었다. 봄이 가고 여름이 되자 잎사귀가 풍성하게 돋아난 나무가 빈 땅을 가득 채웠다고 했다. 달려가서 살펴보니 나무들이 어우러진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건드려서는 안 될 풍경이었다. 공사하는 동안 옮겨 심었다가 건물을 세우고 나서 원래 위치에 다시 심는 방법도 있지만 그 과정을 거치면서 나무들이 상하지 않을지, 제대로 잘 자랄지 확신할 수도 없었다. 사람도 이사하고 다시 되돌아오는 과정이 심리적으로 영향을 끼치는데, 수십 년 동안 뿌리 내린 나무에는 잠시라도 뿌리 들리는 과정이 치명적일 수도 있다. 나무에도 트라우마가 될 것이다.
건축주는 고심 끝에 나무가 없는 빈 땅에 새로 설계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무에 물어본다면 나를 가만히 놔두라고 애처롭게 부탁했을 것이다. 결국 나무의 민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나무를 배려해 좁은 부지에 설계를 하다 보니 첫 번째처럼 탁 트인 집이 되지는 못하게 되었다. 그래도 건축주는 수긍했다. 이 집의 두 번째 고민은 정화조였다. 딱 좋은 위치에 놓지 못한 이유는 그 장소에 건축주와 인연을 맺은 강아지와 고양이들이 죽어 묻혀 있기 때문이었다. 잠들어 있는 그들을 존중해서 좀 멀리 돌아서 가기로 했다.
나는 고작 나무의 민원을 들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소심한 건축가지만 이 분야에서 아주 적극적으로 대처했던 건축가가 있다. 일본 건축가 시게루 반은 자신의 집을 짓기 위해 구입한 땅에 작은 숲이 있는 것을 보고 그 땅에 맞는 새로운 건축구조를 만들었다. 나무를 최대한 살리면서 나무들 사이에 집이 앉혀지도록 삼각형 구조를 기본으로 집을 지었다. 세 개의 기둥을 놓는 삼각형 구조는 나무 사이로 건물이 안정적으로 배치되기에 가장 좋은 방식이었다. 집과 나무가 공존하는 방식을 고민한 결과였다. 건물 앞쪽으로 나무 사이로 꼬불꼬불한 멋진 공중 산책로가 생겨서 자연 속의 집이 되었다.
건물을 짓고자 땅을 산 사람이라면 십중팔구 나무나 숲을 베어버릴 것이다. 낡은 집이 있다면 그것 역시 사정없이 밀어버릴 것이다. 오랜 시간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구불구불한 땅과 길은 평평하게 깎이고 넓혀질 것이다. 전원주택을 지으라며 언덕을 평지로 만들고 울창한 숲을 미래의 아파트 단지로 보고 거래하기도 한다. 폭력적인 방식으로 땅의 새 주인은 자리를 잡는다. 조경을 위해 값비싼 나무들을 사와서 심는다. 이 나무들이 뿌리 내리고 땅의 주민이 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할까?
땅의 주인은 누구일까? 다시 물어보고 싶다. 오랜 세월 그곳에 존재했던 낡은 집, 나무, 바위, 굴곡진 언덕. 모두 땅에 대해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민원에 귀를 기울이면 어떨까?
정구원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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