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삶과 문화] 건축 영화

입력
2019.09.27 04:40
31면
0 0
영화는 건축을 깊이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다. 한 건축가가 이루어낸 다양한 건축물과 그가 평생 고민한 것들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건축은 이야기라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 스틸 이미지. 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는 건축을 깊이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다. 한 건축가가 이루어낸 다양한 건축물과 그가 평생 고민한 것들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건축은 이야기라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 스틸 이미지. 영화사 진진 제공

건축은 장면이 아니라 이야기다. 건축가와 집주인과 집에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연속된 흐름을 가진 장소다. 건축은 자연, 인간, 도시를 빼고 말할 수 없다. 건축가는 늘 이를 고민하고 그 과정이 건축 속에 투영되며 건축을 해나가면서 건축가 역시 함께 성장한다. 자연, 인간, 도시는 건축의 출발이다. 공기처럼 너무 기본적이고 당연한 것이어서 가끔 그것을 잊기도 하지만, 건축가라면 이를 평생 고민할 것이다. 그러므로 건축에는 건축가의 인생이 통째로 담긴다.

그러나 완공된 건물만 접하게 되는 사람들은 이 과정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건물은 집주인의 요구에 따라 지어지는 것 아닌가, 어떻게 건물 하나에 자연과 인간과 도시를 담는다는 말인가, 그렇게 건축이 대단한가, 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건축을 깊이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다. 한 건축가가 이루어낸 다양한 건축물과 그가 평생 고민한 것들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건축은 이야기라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 준다.

최근 정다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를 보았다. 이타미 준은 재일교포 건축가다. 오래전부터 다양한 작품들로 접해온 원로 건축가인 그를 영화를 통해 집중적으로 살펴보면서 복잡하고 놀라운 감정을 느꼈다. 이타미 준에 대한 내 기억은 학창 시절까지 흘러간다. 잡지에서 멋진 작품을 보고 도대체 누가 이런 디자인을 했나 관심을 가졌던 게 그 처음이다. 아마도 ‘엠빌딩’(1992)이었을 것이다. 매끄러운 콘크리트와 울퉁불퉁한 돌덩이들이 과감하게 적용된 외관에 반했다고 할까? 이후로도 꾸준히 발표되는 이타미 준의 작품들은 건축 초년생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특히 2000년대 제주도에 지어진 핀크스미술관, 방주교회, 포도호텔 등은 형태나 재료의 사용도 놀라웠지만 특유의 정서가 느껴져 ‘역시 대가!’라고 인정했던 작품들이었다.

하나하나 훌륭한 건축물이지만 이들을 전체적으로 본다면 건축가의 오랜 고민과 생각이 차곡차곡 쌓여 정점에 이른 과정이 보인다. 자연과 건축이 어떻게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며, 그걸 건축가가 얼마나 고집스럽게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영화는 천천히 말하며 관객들을 건축의 이야기 속으로 이끈다. 이 영화를 보고서 제주 포도호텔의 독특한 객실에 묵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은 관객이 있을까? 그 순간 우리는 건축이 품고 있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선 것이다.

이타미 준의 이야기를 더 하자면 이 멋진 이름은 이타미 공항에서 이름과, 평소 친분이 있었던 길옥윤 작곡가의 준(潤)을 가지고 만든 예명이다. 그의 본명은 유동룡. 한국과 일본 양쪽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는 그의 상황은 그의 작품에 더욱 깊이 스며들어 있다. 건축 초년생 때 그의 작품을 보면서 놀랍고 벅찬 감정을 느꼈다면, 어느덧 건축가로서 경력이 많아진 현재의 나에겐 뼈아픈 반성으로 다가왔다. 자연, 인간, 도시에 대한 고민, 나는 그 공기 같은 일에 얼마만큼 으르렁거리며 덤벼들었던가!

건축 영화를 자주 접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매년 가을에 열리는 서울국제건축영화제를 찾아보면 좋겠다. 벌써 11회인데 해마다 문제적인 작품들, 흥미진진한 작품들이 상영된다. 미스 반 데어 로에라는 걸출한 건축가의 걸작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을 다룬 작품도 있고, 렌조 피아노의 건축워크숍도 간접 체험할 수 있다. 여성 건축가들의 고군분투를 다룬 작품도 있고, 건축가가 지은 집에 사는 보통 사람의 이야기도 나온다. 영화제는 9월 25일부터 9월 29일까지 열린다. 방을 꾸미고 집을 구하는 TV 프로그램도 흥미롭지만, 자연, 인간, 도시에 대한 건축의 해답을 한번 들어보고 싶다면 건축영화제에 가보길 권한다.

정구원 건축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