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10월 25일, 미군 첫 흑인 장군이 육군에서 탄생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정년이 코앞인 만 63세 대령 벤저민 올리버 데이비스 시니어(1877~1970)를 준장으로 승진 임명했다. 한달 뒤 대통령 선거에서 루스벨트는 54.7%를 득표, 공화당 웬델 윌키 후보를 누르고 4선 대통령이 됐다. 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의 군대 내 인종차별 반대 운동이 격렬하던 때였다. 차별 진영에서는 물론 비아냥댔다. 계급만 장군이지 대선용 인종정치의 ‘졸(卒)’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워싱턴DC에서 태어난 벤저민 데이비스는 하워드대 재학 중이던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에 자원병으로 입대해 전쟁을 치른 뒤 전후 미 육군에 정식 입대, 제9기병대 이등병으로 군 생활을 시작했다. 1901년 소위로 승진했지만 흑인 장교의 지휘에 순응할 백인 사병은 없었다. 그는 아프리카 라이베리아 군사자문관으로, 필리핀 주둔군 흑인 부대 지휘관으로 일했고, 귀국 후에는 터스커기 군사연구소와 윌버포스 군사대학 교관으로서 흑인 신병들을 가르쳤다. 1930년 흑인 최초로 대령이 됐고, 1938년 그로선 첫 야전 지휘관 보직으로 뉴욕 할렘 지역방위군 지휘를 맡았다. 미국-스페인 전쟁서부터 시작해 양차 대전을 비롯한 20세기 전반기 미국 전쟁을 모두 치르면서도 야전 지휘관 경험이 거의 없다는 이력 자체가 인종차별의 증거였다. 그는 1941년 전역을 신청했지만 반려돼 육군 참모본부 감찰관으로 일했고, 1942년엔 유럽 전선의 미 육군 인종갈등 조정 자문관으로 파견됐다. 그는 군복무 50년 만인 1948년 7월 전역했다.
그의 차남 벤저민 올리버 데이비스 주니어(1912~2002)는 흑인 최초 미 공군 장군이자 최초의 4성 장군이다. 시카고대와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한 그는 2차 대전 흑인 전투비행단 터스커기 전투편대를 거쳐 한국전쟁에도 참전한 전형적인 전투비행사였다. 아버지 못지않게 인종차별을 견뎌 1954년 10월 준장, 1965년 중장으로 승진한 뒤 1970년 예편했다. 98년 10월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그에게 네 번째 별을 하사함으로써 평시 군 최고 계급인 4성장군이 되게 했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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