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8 이기붕의 요설

1960년 3월 15일 부정선거 직후 대통령과 부통령 당선자로서 경무대에서 기념촬영한 이승만(왼쪽)과 이기붕. archives.go.kr
이승만 초대 정부 권력 2인자로서 제1공화국의 파행을 주도한 이기붕 민의원 의장(국회의장)이 1960년 3월 18일 기자회견에서 “총은 쏘라고 준 것”이라고 말했다. 사흘 전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향한 경찰 발포를 그는 그렇게 정당화했다.
3·15 부정선거는 정치적 궁지에 몰린 이승만 정권이 공권력과 정치 외곽단체까지 동원해 조직적 선거 부정을 저지른 제4대 대통령 선거를 일컫는 말이다.
56년 대선과 58년 민의원 선거에서 냉담한 민심을 확인한 이승만 자유당 정권은 당시 내무장관 최인규를 주축으로 선거대책본부를 결성, 59년 3월부터 선거 부정 전략을 기획했다. 내무부 산하 경찰과 전국 각 도지사와 시장, 군수, 반공청년단 등이 총동원됐다. 그들은 유권자 매수와 협박은 물론이고 미리 기표한 투표용지로 투표함을 채워두는 ‘사전 투표’와 대리 투표, 유권자들을 조별로 조직해 조장이 기표 내용을 확인한 뒤 투표함에 넣게 하는 조별 투표 등을 예행연습까지 해가며 감행했다. 경찰과 자유당 완장을 찬 정치 깡패들은 각 투개표소에 배치돼 선거 참관을 방해하고 취재를 막았다.
선거 당일 오전 야당인 민주당 마산시당을 시작으로 경남도당과 중앙당이 잇달아 선거 무효 성명을 발표했고, 오후부터 시민들의 항의 시위가 본격화했다. 그 사태가 격화-장기화하면서 4·19 혁명으로 이어졌고, 이승만 정권이 붕괴하면서 이기붕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법치-민주주의의 파행과 공권력의 타락을 사물(총)의 기능으로 정당화하려 한 이기붕의 요설은 한국 현대 정치사의 상징적인 망언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에 버금가는 법-기술적 요설들이 최근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숙의 과정에서 이어졌다.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 권한도 어떤 이들에겐, 거두절미 쓰라고 준 권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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