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야심차게 학교 공간 혁신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처음 맞닥뜨린 장면이 학생 없는 학교였다. 그래도 디자인 작업은 계속되었다. 등교가 시작되자마자 놓칠 새라 학생들과 워크숍 자리를 만들었다. 1m 이상 거리두기를 하고 자리에 앉아 마스크를 쓰고 이야기를 나눴다
질문부터 던져보았다. 학교에서 가장 좋은 공간은 어디인가? “어디가 좋은지 몰라요!”라고 아이들이 쑥스럽게 답했다. “오늘이 학교에 두 번째 온 건데요. 다 돌아보지도 못했는걸요.” 중학교 1학년이다. 뉴스에서 익히 들어왔지만, 실제로 맞닥뜨리니 충격이었다. 나름 분위기를 만들어본다고 시도한 질문인데 턱도 없다. 코로나로 인해 학교에 겨우 두 번째 나온 아이들에게는 너무 어려운 질문이었던 것이다.
연속성도 없다. 학년별로 나오는 날이 달라서 오늘은 3학년, 며칠 후에 1학년, 2학년은 그 다음주 이런 식이다. 아이들 달래며 이런저런 이야길 하다보니 디자인 이야기까지 이끌어 갈 수가 없다. 학년별로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학교에 두 번 나온 1학년은 역시나 ‘착하다’는 말을 들으려고 노력하며 숙제를 하듯 집중하는 모습이 보인다. 2학년은 여유가 있다. 척척 대답도 하지만 슬슬 딴짓도 한다. 가슴팍 명찰에 체육부장, 도서부장 같은 직함도 달려 있다. “도서부장이면 책 많이 읽겠네? 우리 와이프는 하루에 1권 읽는데”라고 말을 던져본다. “저는 뭐 그 정도까지는....” 이런 답변이면 괜찮다. 2학년은 그런대로 대화가 가능하다.
3학년은 군대 말년 병장을 보는 것 같다. 중학교 안에선 최고참이 아닌가? 이들은 딴 세상에 있다. 워크숍은 저리가라다. 감정에 얼마나 솔직한지, 선생님, 지루해요, 그건 재밌어요, 그건 아니 등등 평가도 자유롭다. “에이, 혁신 공간 만들어질 땐 저흰 졸업하고 없겠네요.” 관심 없어요...라는 듯 저희들끼리 까르르 웃는다. 얘들아, 그래도 대화에 집중해다오.
대학 강의를 10년 넘게 했지만 숨이 찬 건 처음이었다. 마스크 때문이었다. kf80도 계속 말하는 건 힘들다. 학생들의 표정을 보면서 강의 내용도 바꾸고 지루해하는 학생에겐 질문도 던지면서 분위기를 잡아가는데, 마스크 너머의 눈빛만으로는 파악이 안된다. 표정을 알 수 없다는 건 메아리 없는 환호성처럼 맥빠지는 일이다. 해상도 낮은 조그만 화면을 보고 하는 온라인 수업도, 마스크 낀 얼굴을 보고 하는 수업도 시원치가 않다. 기존의 교육 방식이 전혀 먹히지 않겠다는 생각이 절절히 들었다.
아이들을 한 공간에 몰아넣고 교육해온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한가, 의문이 든다. 성적을 기준으로 줄 세우며, 상처주고 상처받는 구조.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차별이 잔인하게 느껴진다. 학교라는 공간이 그나마 갖고 있던 쓸모, 친구를 만들고 추억을 쌓는 공간이라는 쓸모마저 잃어버린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학원에서 배우고 카페에서 공부하는 시대에 학교는 어떤 쓸모의 공간이어야 할까? 수없이 질문이 쌓인다.
학년마다 따로 워크숍을 하면서 똑같은 답을 받은 질문이 있다. 학교에서 가장 좋을 때가 언제냐는 물음에 ‘학교 교문을 나설 때’라고 답한 것이다. 역시 학생들은 대단하다. 학교가 더 이상 재미있는 공간이 아님을 명료하게 알게 해 준다. 머무르고 싶지 않은 공간, 설레지 않는 공간이라는 사실. 세상에 멋진 공간이 많고 어릴 적부터 좋은 공간을 경험해 온 아이들에게 학교 공간은 너무나 고릿적 공간이다. 계단에 써붙인 온갖 교훈 문구들이 유튜브와 인스타 시대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런 학교에 건축가는 어떤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을까? 점점 숙제가 많아진다. 학생 워크숍을 모두 마친 오늘, 더 깊은 고민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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