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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한가하게 있다가 당한다

입력
2020.06.30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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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무사안일(無事安逸)하면 무너지기 마련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무풍지대처럼 여겨지던 부산에 간담 서늘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21일 러시아 국적 냉동화물선을 탄 러시아 선원 16명이 코로나19에 집단 감염된 상태로 부산 감천항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입항 전 아무 이상이 없다는 식으로 제출한 서류만으로 통과될 수 있는 검역 시스템 탓에 이들은 태연히 부산으로 들어왔다. 그것도 모르고 도선사와 하역 작업자를 비롯한 국내 인력들은 배에 올랐다. 150명 안팎의 사람들이 접촉자 처지가 됐다. 다행히 국내 접촉자 중 확진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이들이 감염된 상태에서 부산 시내를 활보했을 경우를 생각하면 아찔하기만 하다.

이는 코로나19 확진자가 60만명이 넘는 대유행국 러시아에서 들어온 선박에 대한 적극적인 감시가 없어 벌어진 일이다. 인력 부족 등 여러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을 감안하더라도 그 흔한 체온 측정조차 시도해 볼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무사안일 그 자체다.

앞서 지난 19일에는 부산의 한 호텔에서 전국에서 수백 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사행성 포커대회가 2박3일 일정으로 열렸다. 행사 주최측은 직원 교육과 고객 만족  등을 이유로  인터넷 생중계까지 하면서 대회를 마무리했다. 관할 구청도 주최 측 해명을 그대로 적은 현장 점검 보고서만 제출하는 등 별일 아니라는 식으로 대응했다. 부산시는 점검 결과 직원 교육을 빙자한 포커대회라고 결론 내려놓고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재난업무를 총괄하는 재난안전과와 위생업무 담당인 보건위생과가 서로 상대 업무라며 업무를 떠넘기면서 방치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 포커 대회는 제주도가 집합금지 명령을 내려  무산되자 대회 장소를 부산으로 변경한 것이었다. 제주도는 밀폐된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장시간 머물면 코로나19 감염 가능성이 높고 전파 우려가 크다고 판단했다. 똑같은 위험 상황 속에서 한쪽은 능동적 대처를 한 반면 또 다른 한쪽은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있었던 셈이다. 

이태원 클럽발 확산이 물류센터에서 다시 방문판매로 이어지는 등 코로나19가 수도권에서 산발적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지방으로도 확산되는 양상이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막고 대처해야 한다. 지금은 그렇게 하지 못했기에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확진자가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어쩌면 생각하지도 못한 게 아니라 생각 자체를 안하고 먼저 나서 예방하겠다는 의지조차 없었던 탓일지 모른다.

얼마 전 10여명이 모이는 한 점심 식사 자리가 있었다. 난데없이 참석자 중 한 명이 체온 측정기를 꺼내 들었다. 모두의 체온을 일일이 측정했다. 체온 측정기를 들이대며 정색하는 그를 보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참 별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련의 무사안일 행태들을 떠올리면 이를 별나다고만 할 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엄마, 여기는 왜 체온 측정을 하지 않나요?" 며칠 전 간 음식점 입구에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이가 한 천진한 말도 자꾸 귓가에 맴돈다. 코로나19는 우리가 마음을 놓고 있는 때 뚫리기 마련이다.

K방역의 성공적 대처가 국제사회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낫다고 칭찬받는 건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 스스로  방역의 절대적 기준을 엄수하고 코로나19로부터 우리를 지킨다는 마음의 자세가 더 중요하다. 정부나 각 지자체, 기업, 개인할 것 없이 '이대로면 괜찮다’는 무사안일에 빠지는 순간 코로나19의 역습을 당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코로나19는 지금도 진정되지 않고 있다. 2차 대유행이 진행되고, 가을 대유행도 예상되고 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될 시점이다. 무사안일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기자사진] 권경훈

[기자사진] 권경훈


권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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