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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공무원이 AI공무원과 다른 점

입력
2020.11.16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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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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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아프리카로 출장을 다니다 보니 그 나라 공무원들과 일할 기회가 많다. 소위 개발도상국에서 ‘국제개발협력’의 일환으로 주로 공무원들의 역량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지원한다. 그런데 비행기를 타고 25시간 정도 걸리는 먼 대륙의 나라를 가면 가끔씩 1960~70년대쯤으로 시간 이동을 한 느낌을 받는다. 그 시절 우리나라 공무원들의 일하는 방식도 이러했을까 싶은 순간들이 있다.

A국의 전자정부를 지원하는 사업에서 IT 시스템을 완성하였다. 정부 담당자가 잘 인계받았다는 사인만 하면 일이 끝나는데, 서명을 하지 않고 몇 달을 버티는 것이다. 속사정을 알아보았다. 자기가 잘 모르는 IT 시스템을 받았다가 혹시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져야 할까 봐 사인을 못하겠단다. B국 공무원 교육훈련기관에서 다른 나라가 준 최신식 전자기기를 전원도 꼽지 않고 새것 그대로 고이 모시고 있는 모습도 보았다. 혹시나 고장 나면 자기가 책임져야 할까 봐 건드리지도 않는다고 했다. 한번은 C국 공무원과 이런 저런 일을 해 보자고 함께 얘기하고 나서 몇 달을 기다려도 진척이 되지 않은 적이 있다. 왜 이리 지연되느냐 물으니 아무리 작은 프로젝트라도 최고위층까지 보고하고 승인을 받아야 일을 할 수가 있다고 기다려 달라고 한다. 의사결정권을 가진 중간관리자가 없고 모든 결정은 조직 수장의 결단이 있어야만 하기에 속절없이 시간만 흘러갔다.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고 의사 결정을 미루는 모습. 우리가 생각하는 복지부동 공무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우리라고 이런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을까? 물론 과거에 비해 많이 좋아진 것이 사실이다. 요즘 한국에서 일하며 만나 본 공무원들은 적극적으로 자기 일을 찾아서 하고 진취적으로 새로운 일을 개척하고자 노력한다. 윗선의 눈치를 보지 않고 결정할 수 있도록 위임전결 규정도 잘 갖춰져 있다. 전문화, 분업화된 조직에서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불러서 현장의 목소리를 물어보고 의사 결정을 하는 것도 더 이상 어색한 모습이 아니다. 하지만 소극적 규정 적용, 관습을 따르는 행정집행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공무원들은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권한과 책임’ 문제 앞에서 번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공무원의 결정이 몇 년 뒤 부메랑이 돼서 개인에게 법적 책임까지 묻게 되는 사례들이 늘어나면서 그들의 어깨는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국회에 ‘행정기본법’이 제안되어 정기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제 4조에 ‘적극행정’을 명문화하고 "공무원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직무를 수행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적극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같은 법 20조에는 ‘재량’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자동화된 인공지능 시스템도 법령에 기초하여 행정처분을 내릴 수 있다는 ‘자동적 처분’ 조항도 신설될 예정이다. 그 취지를 추정해 보면, 자동적으로 판단이 가능한 행정처분은 인공지능에 맡기고 공무원은 공익을 위해 평등하고 공정하게 재량권을 발휘하며 적극적으로 일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결정을 미루고 책임을 지지 않는 소극 행정은 오래 전 과거에나 있던 일로, 또는 그저 먼 나라 일로만 기억되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AI 공무원과 인간 공무원이 무엇이 다르겠는가?



김은주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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