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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카와 이건희

입력
2021.01.06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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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시각물-지평선삽화

시각물-지평선삽화

"자동차에서 전장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어 삼성이 축적해온 전자 분야의 기술력을 성능 차별화의 포인트로 삼을 수 있다."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97년 펴낸 에세이집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자동차 사업에 진출한 이유를 설명한 대목이다. 이 회장은 '세계를 변화시킨 기계'인 자동차의 주도권을 21세기엔 우리나라가 잡을 수 있다고 확신하고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도 삼성의 진출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세상은 이를 정경유착과 개인 취미의 산물로 평가절하했다. 삼성차는 결국 법정관리를 거쳐 2000년 르노에 매각됐다.

□ 옛날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애플이 이르면 2024년 자율주행 전기차를 출시할 것이란 최근 외신 때문이다. '애플카'엔 주행 거리를 크게 늘린 혁신적인 배터리가 탑재될 것으로 알려졌다. 보도에 대해서 애플은 묵묵부답이다. 자율주행 운영시스템이라면 몰라도 투자 대비 이익률이 낮은 완성차 시장에 진출하긴 힘들 것이란 반론도 나온다. 그러나 애플은 6년전부터 '타이탄'이라는 자동차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2017년 캘리포니아주에서 자율주행 테스트 허가도 받았다. 시가총액이 750조원을 넘은 전기차 기업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는 회사를 한때 애플에 팔려했다는 일화를 공개했다. 아이폰을 위탁 생산하고 있는 대만 폭스콘이 중국 전기차 기업 바이톤과 손잡고 내년 1분기 중 전기차를 생산할 것이란 뉴스도 나왔다. 폭스콘이 애플카를 생산하지 말란 법이 없다.

□ 애플카는 새삼 이 회장의 선견지명을 돌아보게 한다. 애플카가 현실화할 경우 삼성이 어떻게 대응할지도 관심사다. LG카나 SK카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전기차의 핵심인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다. 이 회장의 예상처럼 한국이 미래차를 주도할 가능성은 더 커졌다. 증시도 이를 반영하기 시작했다.

1997년 5월 삼성자동차 부산공장을 방문한 이건희 회장 내외가 차량공장 설비 가동식 후 전기차를 이용해 차체공장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7년 5월 삼성자동차 부산공장을 방문한 이건희 회장 내외가 차량공장 설비 가동식 후 전기차를 이용해 차체공장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 자동차와 전자 산업의 경계가 무의미해진 시대가 됐다. 생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 밖에 없다. 한국 경제의 기적은 전 국민의 땀과 피가 이룬 성과지만 미래를 내다 본 거인들의 기업가정신과 사업보국 철학이 없었다면 설명하기 힘들다. 지금 그런 선각자는 누구인가.


박일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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