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태양은 가득히(Plein soleil)'에서 부자 친구를 살해하고 거짓으로 죽은 친구 행세를 하다 결국 발각되는 '톰 리플리(Tom Ripley)'를 연기한 알랭 들롱(Alain Delon)은 반항아적인 인상과 잘생긴 외모 덕분에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 영화의 주인공 이름에서 유래한 '리플리 증후군'은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는 꿈을 위해 자신의 신분과 정체를 속여 가며 거짓말을 일삼다 결국 본인 스스로도 그 거짓말이 사실이라고 믿게 되는 망상장애를 말한다.
정신의학에서 망상(delusion)은 자신의 사고체계가 명확하게 비현실적이지만 이를 인식하지 못한 채 주관적 확신을 가지는 것으로 정의된다. 반면 허위에 대한 인식이 있는 경우는 그냥 거짓말(malingering)이다. 영화 속 리플리는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리플리 증후군이 아니라 거짓말을 일삼는 범죄자이다.
톰 필립스(Tom Phillips)가 쓴 '진실의 흑역사'에서 "거짓말쟁이는 진실에 아주 관심이 많은데 왜냐하면 진실이 어디에 있는지 그 위치를 정확하게 알아야 용의주도하고 정밀하게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따라서 거짓말쟁이인 리플리는 불리한 사실을 실수로라도 인정하는 순간 바로 파멸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인식하고 있었다.
영국의 작가인 토머스 데커(Thomas Dekker)는 "진실은 아버지를 하나만 두었으나 거짓말은 수천 명의 사내가 낳은 사생아로서 여기저기 곳곳에서 태어난다"고 했듯이 우리 모두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거짓말을 한다. 물론 선의의 거짓말도 있지만 독일의 계몽주의 철학자 크리스찬 볼프(Christian Wolff)에 의하면 '거짓말은 남에게 해가 되는 진실하지 않은 이야기'이다. 조현병을 앓는 환자들이 믿는 망상과는 달리 일반인들이 하는 거짓말은 어떤 의도든 남에게 손해를 끼치게 된다.
철학자 해리 프랭크퍼트(Harry Frankfurt)는 저서 '개소리에 대하여(On bullshit)'에서 "거짓말쟁이가 자신에 관해 감추고 있는 것은 우리를 현실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서 벗어나게 만들려고 꾀한다는 사실이다. 반면에 개소리쟁이가 자신에 관해 숨기는 것은 자기 말이 맞든 틀리든 그 진릿값은 그에게는 중심 관심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라고 주장했다.
미국 작가인 스티브 테쉬흐(Steve Tesich)는 실제 일어난 일보다 개인적인 신념이나 감정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력을 미치는 현상을 '탈진실(post-truth)'이라고 정의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진실과 거짓이 끝없이 대결이라도 펼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다수겠지만 실제로 진실은 처음부터 대결장에 나타난 적이 극히 드물다.
처음으로 얻은 정보가 아무리 왜곡된 것이라도 여기에 목을 매는 기준점 효과(anchoring)에 지배받는 이유는 원래 인간이 비합리적인 존재라서가 아니라 진실 여부가 밝혀진다고 해도 그것이 우리에게 행복감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허황된 개소리가 대중을 사로잡는 이유는 그것이 진실보다는 더 달콤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어쩌면 진실에 대한 무관심이야말로 개소리의 본질이 아닐까 싶다.
진실의 외침은 딱딱해진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데 사방에서 들리는 개 짖는 소리는 밤의 고요함을 흔들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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