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별 보이나요?"
헐떡이며 언덕길을 올라온 사람들이 숨을 채 고르기도 전에 물었다. 해는 다 사라지고 어둠만 남은 밤, 별 하나 보겠다고 한적한 산 속 천문대를 찾아 온 이들은 어찌 그리 다들 어린아이 같은지. 여행이 끊긴 탓에 천문대에서 일한 지난 몇 개월은 눈을 반짝이며 별의 안부를 묻는 어른들을 가장 많이 만나 본 시간이었다. 가리는 구름이 없어서 렌즈 가득 별무리가 잡히는 날이면 어른아이 가릴 것 없이 몇 번이고 다시 줄을 서며 망원경을 들여다보았다.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 이름을 줄줄 외는 아들을 따라 시큰둥하게 끌려온 아빠도 밤하늘에 붙인 스티커처럼 선명한 토성의 고리를 보면 앗, 하고 살포시 탄성을 질렀다.
제일 인기를 끄는 건 울퉁불퉁한 달 표면 관측이었다. 다이아몬드 부스러기쯤으로 보이는 별자리에 비하면, 숭숭 구멍이 파인 달의 표면은 렌즈에 한 가득 큼직하다. 빛의 속도로 1년을 가야 닿는다는 1광년 거리는 명함도 못 내밀 만큼 멀고 먼 별들이 수두룩하니, 지구 주위를 도는 달은 되레 가깝다고 느껴진다. 달 탐사 로봇의 사진 하나만 가지고도 십여 분은 너끈히 수다를 떠는 사람들인지라 손에 닿을 듯한 저 달이라도 한번 가보고 싶다는 꿈을 꾼다.
잔뜩 커진 눈으로 흥분한 이들을 볼 때마다 귀띔해주고 싶었는데, 꼭 우주인이 되지 않더라도 잠시 달 위를 걷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이다. 맑고 건조한 남반구의 고지대라는 최고의 관측 조건을 갖춘 덕에 전 세계 천문대의 절반은 여기 다 모였다고 할 정도. 굳이 망원경을 쓰지 않더라도 긴 밤 내내 머리 위로 별들이 우수수 쏟아진다.
아타카마 사막을 찾는 여행자의 베이스캠프는 해발 2,400m의 작은 마을 산페드로데아타카마(San Pedro de Atacama)다. 선인장을 깎아 지붕을 올리고 진흙을 굳혀 벽을 만든 나지막한 집들이 전부지만, 새벽마다 4,300m 높이에서 뭉글뭉글 하얀 증기를 뿜어내는 간헐천을 찾아가는 차량들로 분주하다. 손가락 만한 것부터 몇 미터짜리 큰 구멍까지, 저 아래에서 부글부글 끓던 물이 어느새 하늘로 솟구쳐 오른다.
오후면 메마른 사막 지대로 탐험을 떠난다. 바람과 물에 깎이고 남은 지형이 달의 표면을 쏙 빼닮아서 이름마저 달의 계곡(Valle de la Luna)이다. 지구에 이리도 낯선 곳이 있다니, 아무것도 자랄 것 같지 않은 황무지를 걷다 보면 외딴 행성에 착륙한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화성 탐사선의 시제품을 여기서 시험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해가 떨어질 시간이면 모래 언덕 위로 걸어 올라가 석양을 기다릴 차례다. 생명의 흔적 하나 없는 사막에 우두커니 앉아 있으면 달에 홀로 떨어져 구조선을 기다리는 기분이 이런 걸까 싶다.
용암이 굳은 흔적 사이로 간헐천이 솟아오를 때, 끝없이 펼쳐진 사막에서 일몰을 맞을 때, 늘 보던 풍경에서 색다른 풍경으로 옮겨가면 사람들은 인생을 되짚어보며 소원을 빌곤 한다. 하지만 그 흔치 않은 순간에 떠오른 소망이란 하나같이 소박하다. 어쩌면 인생은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 의외로 단순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 해의 첫 보름이라는 오늘, 평범한 장소에 머무는 이에게도 일 년에 딱 한 번뿐인 특별한 순간이 찾아왔다. 복잡할 것도 없이, 간결한 내 진심을 되돌아볼 기회 말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