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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쇼맨 '관종'이 활개 치는 사회

입력
2021.04.04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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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위대한 쇼맨' 스틸컷.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영화 '위대한 쇼맨' 스틸컷.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위대한 쇼맨(The greatest showman)'은 쇼 비즈니스의 창시자이면서 최초의 비영리병원을 설립했던 '바넘(Phineas Taylor Barnum)'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든 뮤지컬 영화이다. 피부색과 장애로 멸시받던 배우들이 '이게 나야(This is Me)'라고 외치며 노래하던 장면은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기도 했다.

비록 영화가 창작의 산물이긴 하지만 실존 인물인 '바넘'을 지나치게 미화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미국의 하원의원을 지내면서 노예제 폐지까지 주장하기도 했지만 실상은 유색인종이나 장애인을 사업의 도구로만 이용했던 이중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특별한 존재'라고 외쳤던 영화의 장면이 인간애로 잘 포장한 위선의 연출이었던 셈이다.

'흥행의 천재 바넘'을 저술한 강준만 교수에 의하면 '쇼맨(showman)'을 자신의 생업으로 삼았던 '바넘'이란 인물은 대중을 속이면서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으며, 오히려 "대중은 속임을 당하는 것을 즐긴다"는 주장을 했다고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려 있는 '쇼맨십(showmanship)'의 정의를 살펴보면 '특이한 언행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그들을 즐겁게 하는 기질이나 재능'이라는 다소 긍정적인 의미도 있지만 '얄팍하게 남을 현혹하여 그때그때의 효과만을 노리는 수완'이라는 부정적인 뜻으로 더 많이 사용된다.

흔히 대중의 관심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관종'이라고 부르는데 '관심'과 '종자'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관심종자'의 준말이다. '관종'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남의 시선을 끌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하는데 이러한 쇼맨십이 지나치면 결국 '바넘'처럼 대중을 기만하는 관종으로 전락하게 된다.

임홍택의 저서 '관종의 조건'에서 "과도한 행동을 하는 부정적인 존재를 관종이라고 부르지만 우리 모두는 기본적으로 관심을 갈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따라서 남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무의식적인 행동이나 주위의 긍정적인 반응에 기쁜 마음이 드는 현상은 본능적인 인정 욕구의 발로이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관심을 끌기 위해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행동을 하는 관종은 왜곡된 자기만족감에 심취하거나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사실을 조작하기도 한다. 만약 그 관심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로 쏠린다면 그 사람을 폄하하거나 음해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고 하기도 한다.

정신질환 중에는 연극성 성격장애(histrionic personality disorder)라는 진단 기준이 있다. 이들은 자기중심적이고 항상 다른 사람이 자신만 주목하기를 원하며 과장된 감정을 표현하는 특성을 가진다. 원래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대중의 시선을 끌어야 하는 직업에서 오히려 성공하기도 하지만 '관심' 그 자체에만 집착할 때는 자기 확신의 부족과 칭찬에 대한 끝없는 갈망으로 인해 삶 자체가 망가질 수도 있다.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일단 유명해져라. 그러면 당신이 똥을 싸더라도 사람들이 열렬히 박수를 칠 것이다"라는 말은 그가 말한 적이 없는, 오직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가짜 명언이다. 관심을 끌기 위해서 아무 말이나 내뱉어도 유명해질 수 있는 한국 사회의 문화가 관종들이 활개 치게 하는 토양을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닐까?



박종익 강원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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