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간배려는 그 나라의 공간인식에 대한 수준을 측정하는 척도이다. 사회적 약자란 신체적 장애가 있는 자, 노약자, 어린이, 임산부 등과 경제적 빈곤층으로 주거환경이 열악하거나 기본적인 생활권에 대한 보장이 어려운 이웃들도 해당한다.
우리나라는 전체 국가예산 중 약 89조 원을 보건복지부 예산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예산 중 많은 부분은 어려운 이웃들을 지원하고 재생시킴으로써 사회적 음지의 문제를 해소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사회적 불평등은 상대적 개념이어서 충분한 것 같아도 상대적으로 빈곤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측면에서 물리적으로 기준선에 해당했다고 해서 충분히 공급되었다고 인식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적절히 만족하고 있는지 감성적인 면은 충족되고 있는지 등 다양하고 입체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또한 이와 같은 정성적 노력은 단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소위 선진 복지국가들의 기본적인 현상들은 국민의 기본적인 생활권이 보장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기본적으로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는다. 다만 조금 사치하고 싶을 때 내가 잘해서 사치를 누리는 부분에 대해서 사회가 인정한다는 점이다.
어울림이다. 우리 전통마을의 어울림은 마을 중심에 우물을 두고 마을로부터 아래 방향으로 논과 밭을 두어 일터가 조성되어 있었다. 마을은 작은 골목길들로 연결되는데 냇가에는 커다란 정자와 느티나무가 서 있고 마을 어르신들이 모여 여러 대소사를 나누었다. 관아와 행정기관은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했고, 그 아래로 마을의 교육을 담당하는 서당이나 향교와 기와집들이 위치했다. 마을 형상의 특징적인 면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어울려 살았다는 점이다. 그런 어울림의 삶은 해방 후 현대화 초기까지도 지속되었다. 그러다보니 마을의 어른들은 마을을 위한 대소사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였다.
하지만 최근 주거 현황은 그런 어울림은 찾아보기 힘들다. 브랜드로, 또는 평형수로 삶의 척도가 정리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안에 소위 사회적 약자라는 사람들을 위한 임대공간이 큰 벽을 사이로 위치한다. 마치 무슨 가격표처럼 브랜드가 나의 가치를 정의하다보니 "어디 살아?"라고 물어보면 그 사람의 가치가 정리되는 형상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그 가치에 충족하고자 열을 내며 살아가게 된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삶에는 과정과 단계가 있었다. 신혼부부가 사글세로 시작하더라도 그 모습이 아름다웠고 살림을 늘려 전세, 자기 집 장만까지의 과정이 보람이고 성취였으며 그 과정이 돈독한 가계 삶의 기쁨과 행복이었다.
지금은 그런 삶의 과정을 찾아보기가 힘들어 보인다. 왜 우리의 삶은 브랜드화되었을까? 집뿐만 아니라 옷, 자동차, 하다못해 각종 물건까지도 브랜드의 가치로 평가 받는 사회가 된 것이다. 이런 브랜드 사회는 사회적 약자를 더욱 소외시키는 역할을 한다. 80만 원 상당의 생계 생활비를 받으며 연명하는 사람들에게 브랜드는 꿈이다. 브랜드 사회는 경제소비중심 사회의 반증이다. 그 안에 상대적으로 부재된 어울림이란 단어를 내 삶으로부터 녹여 넣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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