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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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에 간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해 눈길을 끈 SK이노베이션의 조지아주 전기차 배터리 공장. SK그룹이 해외에 건설한 첫 생산기지가 뉴스의 중심에 선 모습을 보면서 11년 전 SK이노베이션(당시 SK에너지) 배터리와의 인연이 떠올랐다.
2010년 6월 SK이노베이션 대전 유성 연구원을 찾아 상업 생산을 막 시작한 전기차용 배터리를 봤다. 그때 실험실에서 수줍어하며 배터리를 설명하던 연구원의 얼굴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런 SK이노베이션이 이제 미국 한복판에 번듯한 공장을 짓다니.
하지만 그때 추억이 꼭 아름답지만은 않다. 당시는 경제와 환경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녹색성장'이 화두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저탄소 녹색성장'을 새로운 국가발전 전략으로 선포했다. 국회는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도 만들었다.
당시 지식경제부와 대기업 담당 기자로서 녹색성장 관련 취재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자나깨나 녹!색!성!장! 하지만 나의 열정은 얼마 가지 않아 머쓱해지고 말았다.
알고 봤더니 녹색(환경)보다는 성장(경제)에 무게 중심이 놓였고, 그 결정체는 22조 원이 들어갔다는 대규모 토목 프로젝트 '4대강 사업'이었다. 분명 정부는 환경을 위해서라 했지만 환경단체들이 반대했고, 정부는 공사를 밀어붙였다.
결국 4대강 사업은 박근혜 정부가 등장하고 감사원의 감사를 받는 처지가 됐고, 시민들은 '녹조라떼'라는 말과 함께 조롱과 비판을 보냈다. 미래를 녹색성장에 걸겠다던 기업들도 슬그머니 발을 빼고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요즘 온라인에서 자주 보이는 단어 중 하나가 '그린워싱(GreenWashing)'이다. 이는 녹색(green)과 세탁(whitewashing)을 합한 말로 '거짓 환경주의' '녹색 거짓말'이라고도 하는데, 정부나 기업이 겉으로는 환경보호에 앞장선다면서 실제 환경에 피해를 주는 것을 비판하는 의미다.
다음 주 문재인 대통령은 최소 12개 나라 정상과 함께 화상으로 열리는 2021 서울녹색미래 정상회의(P4G)에 참석한다. 이는 '녹색성장과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라는 이름으로 민관이 뭉친 글로벌 협의체로, 코로나19 확산 이후 우리나라가 처음 주최하는 환경 분야 다자 정상회의다.
그러나 국내 일부 환경단체들은 보이콧을 선언했다. 이들은 이번 회의가 기후위기 대응이 아닌 녹색성장에 초점을 맞췄고 결국 기업들에 또 한번 그린워싱 할 여지를 줬다고 비판한다.
정부는 기후위기에 대비하고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그린 뉴딜'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해외에 석탄 발전소를 짓고 국내에 신공항을 건설하겠다고 한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탄소중립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인데도, 정부는 망설이고 있다.
최근 기업들이 코앞에 닥친 기후위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으로 'ESG(환경·사회 공헌· 윤리 경영)'를 내세우고 있다. 기업들의 이런 노력이 다시 흐지부지되지 않도록 정부가 강한 실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정부의 녹색 의지를 의심하는 눈초리가 늘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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