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511과 1,839. 전국 주요 언론사 54개 매체가 사건 발생일부터 5월 31일까지 한 달여간 각각 보도한 이선호씨와 손정민씨의 사망 관련 기사 개수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분석서비스 빅카인즈로 검색한 수치인데 주요 방송사와 신문사 보도 기사가 대상이다. 온라인 매체까지 확대하면 두 수치의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다.
모든 죽음의 무게가 같아야 한다는 이상주의적 발언을 하려는 건 아니다. 세상은 결국 불평등할 수밖에 없다는 잔인한 현실은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두 고인의 이름 앞에서 다시 절감하게 된다.
불평등의 원인이 사망한 두 청년의 계급 격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의 잘잘못이 상대적으로 확실한 사건ㆍ사고보다 의혹과 수수께끼로 가득한 미스터리가 대중의 흥미를 더 잡아끄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과 언론 보도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손정민씨 관련 보도를 보면서 불편했던 건 대중의 호기심에 지나치도록 충성스럽게 복무하는 언론의 비상식적 부지런함이었다. 불신의 대상이 된 경찰 수사의 부실함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기엔 정도가 과했다. 손씨 아버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거의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사건에 관한 정보가 충분치 않은 프로파일러까지 동원됐다. ‘상식’이라는 자의적 판단에 따라 오해와 억지, 왜곡이 사실과 뒤섞여버렸다. 언론은 사건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려 하는 척하면서 대중의 호기심을 이용했다. 그렇게 손씨의 친구 A씨는 최종 판단이 나오기도 전에 사실상 살인범이 됐다.
불완전한 상식을 동원한 논리는 균형을 잃고 이번 사건을 한쪽 방향으로 몰았다. 만취한 사람이 이상한 행동을 하는 걸 정신이 멀쩡한 사람의 기준으로 보는 게 상식적일까. 용의선상에 올라 있다는 이유로 뚜렷한 증거 하나 없이 온 가족이 범죄자 취급받는 걸 참아야 한다는 논리는 상식적일까. 상식이 우리를 자주 배신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자주 망각하곤 한다.
언론이 여론의 일부 큰 목소리에 밀려 살인사건으로 몰고 가는 사이 하이에나들이 몰려들었다. 여기에는 상식도 이성도 없다. 무분별한 억측과 의혹, 가짜뉴스가 난무한다. 얼핏 유족을 위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들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다. 손씨와 관련한 영상으로 한 달 새 수천만 원까지 벌어들인 유튜버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유튜버들만 비판할 순 없다. 사건을 중립적으로 보고 균형을 잡으려 애써도 부족한 마당에 언론도 악성 유튜버와 별반 다르지 않은 장삿속을 드러냈다. 경찰에 대한 불신이 이를 정당화할 순 없다.
“상식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도록 도와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세상을 이해하는 우리의 능력을 심각하게 약화한다는 모순을 안고 있다.” 미국 사회학자 던컨 와츠가 자신의 저서 ‘상식의 배반’에 쓴 구절이다.
손씨 사망사건 관련 기사의 댓글만 보면 우리나라는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있는 게 아니라 A씨를 유죄로 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어 있는 듯하다. 어떻게 추측하든 개인의 자유겠지만, 최소한 언론이라도 불완전한 상식으로 판단하기보다 객관적 사실의 토대 위에서 엄밀한 논리와 이성으로 접근하려 노력할 순 없을까. 우리가 믿는 상식이 얼마나 옳은지 의심해보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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