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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다시 정의해야 할 때다

입력
2021.06.06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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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느 가족' 스틸컷. 티캐스트 제공

영화 '어느 가족' 스틸컷. 티캐스트 제공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은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 한집에 모여 살면서 노인의 연금과 도둑질로 생계를 이어가다가 진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다루었다. 최근 자식을 학대하거나 심지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부모들이 언론에 자주 등장할 때마다 '진정한 가족이란 과연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통계청에 의하면 '2020년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은 0.84명으로 세계에서 압도적인 꼴찌를 기록했다. 현재 인구를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커플당 최소 2.1명은 낳아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심각한 사회적 현상임에 틀림없다. 또한 작년부터 사망자가 출생아보다 많아지면서 인구의 자연 감소를 의미하는 '데드 크로스(dead cross)'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해마다 저출산정책에 국가 예산의 40조 원 이상을 쏟아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선은커녕 출산율이 점점 더 하락해 가는 이유에 대하여 다양한 분석이 난무하지만 한국이 거의 20년 동안 세계 최고의 자살률을 기록했다는 데이터를 대입해보면 인정하고 싶지 않은 해석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가임연령에 있는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인생의 계획표에 넣기에는 현실적으로 가장 힘겹고 두려운 나라에 살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만약 내가 결혼적령기에 있다고 가정했을 때 부모에게 물려받을 재산이 아주 많거나 양육에 별로 어려움이 없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는 한 아이를 낳을 결심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결혼을 한 부부라도 2세가 탄생하는 순간 부딪히게 될 암울한 현실을 상상하다 보면 어설픈 장려책에 쉽게 현혹되지 않게 된다.

우리나라는 2017년에 65세 이상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 이상인 '고령사회'에 진입하였다. 이미 일본을 비롯한 4개 선진국은 그 비율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들어갔는데 한국 역시 2025년에는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집단의 고령화는 낮은 출산율과 기대수명의 증가로 인해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그 속도가 너무나 빠르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과연 그것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에 한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

낮은 출산율과 빠른 고령화로 인한 생산연령층의 급격한 감소가 다음 세대에 재앙적 부담을 가져올 것이라는 명약관화한 미래를 두려워하며 젊은이들은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반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세대는 이런 불안에 무관심하고 오직 자신들의 노후만 걱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대갈등은 점점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프랑크 쉬르마허(Frank Schirrmacher)는 저서 '가족, 부활이냐 몰락이냐'에서 위기의 순간에 가장 힘을 발휘하는 것은 바로 '가족'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혈연이나 혼인을 통해서만 구성될 수 있는 가족의 법적 정의는 더 이상 한국 사회에 유효하지 않다. 이미 각자의 이해에 기반한 자생적인 만남과 관계 형성을 통해 새로운 개념의 가족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수많은 구멍을 메울 수 있는 최후의 보루는 바로 생활공동체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될 것이다. 그러기에 이제는 '민법' 제779조에 있는 가족의 범위를 새롭게 개정해야 할 때이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인간 소외 현상이 점점 심화될수록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단위인 '가족'은 너무나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박종익 강원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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