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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이 불법인 유일한 나라

입력
2021.06.29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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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이 대중적이고 긍정적 이미지를 얻는 데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들이 한몫했다. 2003년 월드컵 1주년 기념 한일전에서 결승골을 넣은 안정환이 상의를 벗고 골 세리머니를 하면서 어깨에 ‘hyewon love forever’라고 새겨진 레터링 문신을 공개한 것이 국내에서 유명인사가 ‘당당하게’ 문신 커밍아웃을 한 첫 사례로 기억된다. 해외 스타로는 안젤리나 졸리가 문신을 좋아하는 걸로 유명하다. 신체 곳곳에 의미 있고 독특한 불교 경전이나 글씨, 문양 등을 새겼다. (안젤리나 졸리 인스타그램)

문신이 대중적이고 긍정적 이미지를 얻는 데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들이 한몫했다. 2003년 월드컵 1주년 기념 한일전에서 결승골을 넣은 안정환이 상의를 벗고 골 세리머니를 하면서 어깨에 ‘hyewon love forever’라고 새겨진 레터링 문신을 공개한 것이 국내에서 유명인사가 ‘당당하게’ 문신 커밍아웃을 한 첫 사례로 기억된다. 해외 스타로는 안젤리나 졸리가 문신을 좋아하는 걸로 유명하다. 신체 곳곳에 의미 있고 독특한 불교 경전이나 글씨, 문양 등을 새겼다. (안젤리나 졸리 인스타그램)


△2007년 영화 ‘버킷리스트’. 암에 걸려 6개월 시한부 삶을 사는 잭 니컬슨과 모건 프리먼이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곱 번째 목록, 그것은 ‘몸에 영구 문신을 새기는 것’이다.

△가수 에일리의 최신곡 ‘타투’의 일부. “영원할 순 없을까/이 짙어진 흔적들/널 내 안에다 새길래/아픔마저 허락해” 그룹 노브레인의 같은 제목 노래 가사 일부. “이제 빛나는 몸에 꿈을 새겨/너의 긴긴 잠을 깨워줄/지워지지 않는 파라다이스”

△빚더미에 올라앉아 힘든 시절을 보낸 연예인 이상민. 그는 척추를 따라 등 아래까지 ‘표풍부종조 취우부종일(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이라는 글귀를 새겼다. ‘회오리는 아침 내내 불지 않고 소나기는 종일 내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노자 도덕경에 나온다. 그는 확실하게 재기에 성공했다.

△미국의 9·11 테러 현장에서 살아남은 소방관들은 순직한 동료들의 이름을 몸에 새기고 다닌다. 동료에 대한 영원한 헌사이자 자신의 직업에 대한 다짐이다.

△공익광고의 천재로 불리는 이제석. 오른쪽 가슴 부위를 사각형 모양 점선으로 문신을 했다. 그 아래에 ‘장기/조직 기증을 희망합니다’라는 글과 가위를 새겼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다 입은 옷을 쓰레기통에 버릴 수도 있지만 기부함에 넣을 수도 있다. 몸이란 죽을 때 벗고 가는 옷과 같다.”

△소설가 천운영의 문단 데뷔작 ‘바늘’은 문신을 새겨주는 상처 입은 여성이 주인공이다. 그는 말한다. “육체와 그 위에 새겨진 글귀 사이에 공존하는 어떤 것. 그것은 아름다운 상처, 혹은 고통스러운 장식이다.”

△서양과 달리 신체발부를 따지는 유교권에서만 문신은 부정적이었다. ‘경을 칠 놈’이라는 욕이 있다. 묵형(墨刑), 경형(?刑)이다. 죄인의 이마나 몸에 먹으로 죄명을 새기는 형벌이다. 왕조시대 중국과 한국에서 문신은 ‘낙인’이었다.

△‘문신(文身)’을 무늬 ‘紋’으로 잘못 아는 사람이 많다. 文자의 갑골문을 보면 사람의 가슴에 문양이 그려져 있다. 글월 文자의 본래 의미는 ‘몸에 새기다’였다.


지금 인스타그램에 영어로 ‘tattoo’라고 치면 무려 1,000만 개 이상의 사진이 뜬다. 한글로 ‘타투’라고 치면 380만 개 이상이다. K-팝만 유명한 게 아니다. ‘K-타투’도 있다.

그런데 문신은 현행법상 ‘의료행위’로서 의사만 할 수 있다. 하지만 장미나 나비를 그려주거나, 연인의 이름을 새겨준다는 의사는 눈 씻고 봐도 없다. 그럴 재능도 없다. 한국은 타투가 불법인 유일한 나라다.

얼마 전 류호정 의원이 타투 합법화 퍼포먼스를 했다. 그런 거 하라고 국회의원이 있는 거라는 그의 당돌한 말이 난 좋았다.

육체의 엄숙주의는 전복된 지 오래다. 내 몸은 내 것이지, 수지부모(受之父母)가 아니다. 몸은 패션이고 캔버스이자 마음의 인화지다. 그 몸에 무늬를 아로새기는 행위는 창의적 예술이자 나의 정체성에 대한 내밀한 커밍아웃이다. 스스로에 거는 주술이자 정신의 부적이다. 기억, 정표, 상처, 신념, 맹세, 존재를 바늘의 고통으로 치환하는 행위다.

(헤나나 스티커 말고) 각인은 지울 수 없고 세월에 풍화되지도 않는다. 문신은 지울 수 없기에 하는 거다. 변화무쌍한 내 마음에 수갑을 채우는 행위다. 그걸 어떻게 언제까지 법이 막을 수 있으랴.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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