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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통이 부서지고 있다

입력
2021.07.12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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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에서 배달 대행업체 라이더들이 음식을 배달하는 모습. 뉴스1

서울 종로구에서 배달 대행업체 라이더들이 음식을 배달하는 모습. 뉴스1


2년 전, 배달을 하기 위해 ‘콜’을 잡았는데 픽업지가 음식가게가 아니라 지하 건물이었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 보니 흡사 마트처럼 생필품들이 대량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과자, 아이스크림, 샴프, 세제, 쌀, 햇반, 생수까지 품목도 다양했다. 운 나쁘게도 손님은 생수를 시켰다. 하필 출입이 어려운 아파트라 생수를 들고 걸어 들어갔는데 택배노동자가 사용하는 손수레를 오토바이에 실고 다닐 수도 없고 죽는 줄 알았다. 그 뒤로 생수 배달은 다시는 잡지 않았는데 ‘이러다가 여름엔 수박이랑 쌀도 시키겠네’라고 투덜거렸다.

그 말이 현실이 됐다. 중소업체에서 시작된 배달 라이더의 생필품 배달이 보편화되고 있다. 배달의민족이 B마트 서비스로 시장을 선점했고, 요기요가 ‘요마트’로 뒤를 따랐다. 최근 쿠팡이츠가 마트 배달을 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주요 플랫폼 3사의 생필품 배달 경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들도 택배보다 빠르고, 자신의 걸음보다 편리한 마트 배달에 푹 빠졌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집 앞 100m에 있는 편의점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것보다, 이불 속에서 주문하고 문 앞에서 먹는 아이스크림이 꿀맛인 법이다.

문제는 무게다. 생수와 음료수를 대량으로 시키면 오토바이 배달통이 버티질 못한다. 한 조합원이 배달통의 볼트가 부서져 너덜너덜해진 사진을 올리자 여기저기서 증언들이 쏟아졌다. 수박을 실은 사진부터 25㎏짜리 밀가루 배달까지,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라이더의 안전이 우려되는 사안이다. 하필 주말에 배달통이 부서진 노동자는 배달통을 고칠 수가 없어 배달 일을 쉬어야 했다. 다행히 B마트의 경우 품목별로 주문할 수 있는 양에 제한을 걸었지만, 가끔 5㎏짜리 수박과 4㎏짜리 쌀, 1.5ℓ짜리 음료수 등 종류를 달리하는 상품을 대량으로 시키면 절망스럽다. 게다가 오토바이 배달통 높이가 높아서 무거운 물건을 실으려면 어깨와 허리에 상당한 무리가 간다. 유리병이라도 포함되어 있으면 조심스럽게 들어서 놓아야 하기 때문에 팔이 떨린다. 실제로 마트 배달을 갔다가 허리와 어깨가 아파서 일을 못했는데 산재가 되겠느냐라는 상담전화가 종종 걸려온다. 라이더들의 근골격계 질환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현재 배달 오토바이와 배달시스템은 음식 배달에 특화되어 있고, 마트 배달에 적합하지 않다.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배달하는 생필품의 무게에 제한을 두고, 위아래가 아니라 옆으로 여닫을 수 있는 배달통이 필요하다. 현장의 노동자는 준비되어 있지 않은데 회사는 사업부터 밀어붙인다. 새로운 사업 초기에 발생하는 위험과 부작용은 별다른 정보 없이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감당한다. 노동자들이 악을 쓰고 불만을 제기하지 않으면 노동과정에서 발생하는 이런 세세한 문제는 문제조차 되지 않는다. 기업의 요란한 광고 속에 노동자의 신음소리는 묻히고, 그들의 어깨와 허리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켜켜이 쌓일 뿐이다. 우리 사회가 노동자들의 침묵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소란을 좋아해야 하는 이유다.

배달만의 문제는 아니다. 최근 서울대 청소노동자의 죽음으로 청소노동자의 근무환경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청소노동자는 2020년에도 2019년에도 존재했다. 단지 우리가 보지 않았을 뿐이다. 긴 침묵 끝에 터져 나온 목소리가 더 시끄러워질 수 있기를 바란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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