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이런 예능은 없었다. 이것은 다큐인가? 예능인가? SBS 축구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은 보통의 스포츠 예능과 다른 포지션을 취한다. 과장된 액션도 우스꽝스러운 포즈도 없다. 그저 축구를 열심히 할 뿐. 여자 출연진들은 퉁퉁 부은 눈으로 다시 필드에 나오고, 발가락 부상을 딛고 한 번 더 공을 찬다. 이들이 필드를 뛰어다니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미소가 나온다. 예뻐서가 아니라, 멋있어서. 실수하는 여자들을 기특해하는 듯한 중계나 자막, 그 안에 숨겨진 우월감만 보이지 않는다면 더 좋으련만!
몇 년 사이에 스포츠를 취미로 즐기는 여자들에 대한 콘텐츠가 많아졌다. 김혼비 작가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와 거제에서 댄스 스포츠를 하는 여자 고등학생들에 대한 다큐 '땐뽀걸즈'도 입소문을 탔다, 예능 '오늘부터 운동뚱'의 김민경은 손대는 스포츠마다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준다. 김민경이 공을 뻥뻥 차거나 처음 해 본다는 사격에서 한 번에 목표물을 명중시킬 때면, '김민경, 사실은 기억 잃은 스파이설'이 떠오른다.
왜 여자의 취미 옵션에는 스포츠가 많지 않았을까? 테니스, 피겨스케이팅, 리듬체조, 컬링, 골프 밖에서 운동하는 여자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요가, 필라테스, 폴댄스에서는 남자를 찾기 어렵다) 왜일까? 어떤 스포츠든 잘 해내는 김민경을 뿌듯하게 바라보는 마음 깊은 곳에는 '운동장을 차지하지 못한 여자'로서의 설움이 숨어 있다. 학창 시절, 운동장은 여학생들의 것이 아니었고 운동을 싫어하는 건 여자애들의 당연한 특성인 줄 알았다. 그러나 김혼비 작가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왜 진작 축구를 하지 않았을까?' 사실 이 질문을 좀 더 엄밀하고 고치면 이렇다. '어렸을 때 우리는 왜 축구할 기회가 없었을까?', '우리는 정말 운동을 싫어했을까?'
김혼비 작가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취미로 스포츠를 즐기는 여자가 많지 않은 것은, 여자들이 움직이는 걸 싫어해서라기보다는 스포츠를 즐길 만한 기회를 얻지 못해서다. 학교 다닐 때도 그런 법을 배우지 못했지만, 사회에 나온다고 함께할 취미 스포츠팀을 찾기가 어렵다. 나는 여자 농구단에서 짧게 농구를 배웠는데,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두 가지다. 농구하는 여자는 어디에나 있고, 농구 코트에서 여자는 침입자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취미로 스포츠를 즐기는 여자에게는 종종 다이어트하냐는 질문이 따라붙는다. 다리에 알이 생기면 안 된다며 적게 걷는 여고생은, 어깨가 넓어질까 봐 수영을 안 하는 대학생으로 자란다. 여자 몸에 흉터가 생기면 어떡하냐고, 팔뚝 굵어지면 나시는 어떻게 입냐고. 스포츠를 취미로 즐기지 못하게 되는 이유는 아직도 많다. 허주경 작가는 농구에 대한 에세이 '계집애 던지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헬스장에서) 그 사람은 승모근에 힘이 들어가면 아주 큰일이 날 듯이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자세를 바로잡으며 "저 승모근 키우는데요?"라고 말해버렸다.
허주경 작가의 '계집애 던지기'
나는 요즘 여자들에게 스포츠 예찬을 하고 다닌다. 여자 풋살이 유행이라고, 클라이밍 재미가 쏠쏠하다고 말이다. 스포츠를 취미로 즐기면 삶의 모든 것들이 조금씩 바뀐다고 한다. 작게는 앉는 자세부터 크게는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 한혜진이 외치던 말이 생각난다.
"몸 사리지 마. 양보하지 마. 밀어붙여,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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