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국가에 살아보면서 가장 놀라운 것은 성문화가 아주 자유롭고 자칫 문란해 보인다는 사실이다. 남성, 여성 구분 없이 결혼 전에 이미 여러 애인을 사귀면서 성관계를 할 뿐만 아니라, 결혼이 아닌 동거를 하면서 아이를 낳아 키우고 여기에 대한 사회적 편견도 없다. 오히려 OECD 나라들 중 20개국 이상에서 이제는 혼외출산 신생아가 전체 출생아의 절반을 능가했다고 한다.
전통적 결혼제도가 와해되어감에 따라 국가별 대응 정책도 다양하다.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등에서는 결혼관계보다 느슨한 시민결합제도(PACS)가 탄생했다. 이 법에 따르면, 동거가족이 세금절감, 상속권 등을 보장받으면서도 결혼보다 그 관계를 끝내기가 쉬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록하지 않고 그냥 사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호주와 뉴질랜드 같은 나라에서는 동거가 특정기간 지속되면 사실혼으로 인정되어 결혼에 준하는 법적 보호를 받는다.
20세기 후반부터 성소수자(LGBT)의 인권운동이 활발히 일어나면서 시민결합제도가 동성애자들에게도 이용되기 시작하였다. 2001년에는 네덜란드에서 세계 최초로 동성결혼이 법으로 인정되었고, 2015년에는 미국 전역에서 합법화되면서 승인국가는 현재 20여 개에 이른다. 동성결혼을 대하는 이들 국가의 시각은 철저히 자유주의와 개인주의 이념에 입각하고 있다. 이성 커플들이 전통적인 혼인 제도를 점차 붕괴시키는 반면, 동성 커플들은 동거를 법적으로 인정받고 결혼도 하면서 이제는 입양의 권리까지 누리게 되었다.
서양인의 결혼에는 사랑하는 두 ‘개인’의 결합이라는 인식이 강한 만큼, 사랑이 식었다는 것도 이혼의 큰 사유가 된다. 최근 한국에서도 이혼율이 높아졌으나 아직 이혼가정에 대한 편견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고, 주로 자녀가 없는 결혼 초기의 부부나 자녀들이 독립한 후의 황혼이혼이 많다. 서양 여성들은 직업종사 비율이 높고, 전업주부라도 이혼 시 재산분할에 유리하며, 자녀 양육비를 제도적으로 보장받지만, 한국 여성들은 전업주부 비율이 높고, 부양비 제도도 미비하며, 아내의 재산 형성 기여도를 따지는 등 재산분할도 불리해 이혼을 꺼리게 된다.
이혼을 잘 안 하는 한국인이 서양인보다 유난히 더 많이 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졸혼’, ‘각방쓰기’ 등이 그것이고, 부부간에 짓궂은 농담으로 남들 앞에서 흉을 보는 것도 결혼관계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이다. 현란한 유머감각으로 유명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남들 앞에서는 부인 미셸 여사에 대한 농담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내로남불’은 나와 남을 서로 다른 잣대로 판단한다는 의미인데, 왜 굳이 ‘불륜’이란 단어를 사용하면서 열렬히 그 신조어를 받아들이는지, 이혼을 잘 하지 않는 문화의 이면에 감추어진 모습을 들춰 보는 느낌이 든다.
전통적인 결혼제도가 서서히 해체되고 새로운 형태의 가족들이 생겨나는 과정에서, 과연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시 묻게 된다. 서구 국가의 입장은 앞에 나서서 계몽하려 하기보다는, 다양한 가족(동거, 동성, 한부모 등)을 뒤에서 쫓아가며 포용하고 법적인 토대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여하튼 결혼제도의 안에서든 밖에서든, 출산을 통한 사회적 재생산은 계속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한국의 성과 가족문화는 지금 어느 시점에 서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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