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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김웅 의원은 인천지검 공안부장 때 쓴 ‘검사내전’에서, 검찰 조직이 뼈를 깎는 각오로 일신하겠다는 발표를 하도 자주해 이제는 더 깎을 뼈도 없는 연체동물이 된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검찰은 아무리 뼈를 깎아도 깎이지 않는 특이 체질인 것 같다. ‘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도 진위를 떠나 드러난 사실만 봐도 검찰 힘이 지나쳐 빚어진 현상이다. 등장인물들이 전·현직 검사들인 것부터 이 시대 권부(權府)가 어디인지 가리킨다.
□ 현대사에서 대표적 권부는 경찰에서 국정원으로, 다시 검찰로 이동했다. 그나마 국정원 견제마저 사라져 검찰 통제수단은 청와대의 인사권 말고는 사실상 없어졌다. 나눌 수 없고, 공백을 허용하지 않는 권력 속성상 검찰 독주는 막기 어렵다. 수사권 조정 등을 통해 권한을 분산시켰다지만 이마저 역부족이다. 이런 검찰이 무서운 건 자제를 모르는, 누구도 무서워하지 않는 데 있다. 전직 대통령 2명과 대법원장까지 투옥시켰으니 두려운 존재란 없게 된 셈이다.
□ 1997년 안기부(국정원) 북풍공작 사건에 사람들이 ‘설마’ 했던 이유는 믿기지 않아서였다. 이번 검찰의 고발사주 의혹 역시 역대급 ‘설마 사건’이다. 선거기간에 검찰이 문서를 작성해 여당 인사와 언론인의 고발을 야당에 사주했다면 국기문란일 수밖에 없다. 더 큰 걱정은 정치적 중립이 무너진 검찰이 초래할 끔찍함이다. 통제되지 않는 검찰 조직, 검사가 여든 야든 대선후보를 겨냥해 오면 지금 같아선 막을 수 없다. 더구나 전직 검찰총장까지 대선후보로 나선 마당이라 우려는 현실적이다.
□ 2001년 9월 11일 아침 미국 자본주의 상징과 군사력의 성전이 공격받았다. 인간폭탄보다 시민들에게 큰 충격은 국가가 나를 지켜주지 못하는 현실이었다. 검찰도 주어진 권한으로 정치적 행보를 한다면 신뢰하기 힘든 괴물일 수밖에 없다.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국법질서를 확립하고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며 정의를 실현함을 그 사명으로 한다. 검사 윤리강령 제1조다. 이번 의혹 사건은 이런 검찰의 명예와 윤리가 걸려 있다. 실체적 진실을 전가의 보도처럼 외치던 전·현직 검사들이라면 진실을 정치색으로 덮어선 더욱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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