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룰을 결정하면서 여론조사 문항에 소위 역선택 방지 조항을 넣는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진 바 있다. 사실 필자도 그렇지만 아마 대부분의 정치학자들은 역선택의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지지하지도 않는 정당의 후보 경선에 참여하려고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일 유인이 크지 않으며, 설사 그런 선택을 하는 유권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숫자는 결과에 영향을 끼치기에는 턱없이 작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기억에 남는 일화는 정치학자들이 모여 있는 단체 채팅방에서 누군가가 실제로 여론조사에서 역선택 문제가 발생하는지 분석한 해외 사례가 있는지 궁금증을 표했을 때였다. 대답은 간단했다. 우리나라를 제외하곤 후보 선출에 여론조사를 반영하는 나라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당의 후보 선출을 위해 여론조사에 의존하는 것이 가지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우선 여론조사의 방식과 문구에 따라 결과가 들쑥날쑥하다는 점은 과연 여론조사가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신뢰할 수 있는 기준인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 사실 정당과 후보들 역시 이러한 문제를 잘 알고 있으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경선 때마다 조사 방식과 문구를 둘러싸고 후보 간 줄다리기가 벌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여론조사 경선이 정당 지지자와 유권자를 후보 선출 과정에 참여하는 주체가 아닌 수동적인 구경꾼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점이다.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고 번호를 누르는 것이 TV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좋아하는 가수에게 문자투표를 보내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잘 모르겠다. 하기야 학예회 수준의 공약발표회와 압박면접을 보니 차라리 TV 오디션 프로그램의 경연이 더 내실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여론조사 경선이 여러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널리 사용되는 원인은 간단하다. 비용이 싸기 때문이다. 시간과 자원을 투자하여 지지자와 유권자들이 제대로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는 것보다는, 여론조사 업체 몇 군데에서 견적을 받는 것이 훨씬 쉽고 편한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이를 통해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처럼 보이는 코스프레도 가능하니 일거양득이다. 또한 정당의 활동과 앞날에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는 당원과 대의원들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정보와 관심이 부족한 일반 유권자들을 상대하는 것이 당 지도부 입장에서는 편하게 정당을 운영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물론 후보 선출 과정에서 일반 유권자의 참여를 배제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여론조사라는 뻔한 방식을 넘어서 이들의 실질적 참여를 보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당의 후보 선출은 단순히 지지율 1위를 가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원과 지지자들이 정당의 정체성과 지향점에 대해 토론하고 재정립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규제 일변도의 선거법에 대한 대대적인 손질이 요구된다. 지금과 같이 정당과 후보자들이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시기와 방법을 세세하게 제한하는 선거법으로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정치적 표현과 정당 활동이 실현되기를 기대할 수 없다. 더 이상 엄격한 규제를 통해 선거의 공정성을 확보하겠다는 접근은 실효성이 없을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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