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축복을 받은 아프리카 우간다에 거주하면서, 집 마당에 아보카도 나무의 모종을 심은 적이 있다. 풍부한 햇살과 수분을 받으며 어린 묘목이 가지를 쑥쑥 뻗으며 대견스럽게 자라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아보카도 나무가 원체 엄청 크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면서, 묘목의 자리를 잘못 잡았다는 깨달음이 들었다. 서둘러 그것을 마당의 다른 곳으로 옮겨 심었는데, 새로운 장소가 싫었던지 잎들이 시들어가기 시작했다. 결국 정원사가 그 나무를 잘라버렸고 나는 마음 저리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어느 날, 잘린 밑동에서 가녀린 가지가 나오면서 푸릇한 잎들이 자란 것을 발견했고, 강인한 생명력에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왔다.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데로 이동하여 적응하면서 사는 것이 식물에게도 편안한 경험이 아니거니, 동물들에게는 오죽할까. 6대륙에 걸쳐 160종의 동물들을 조사한 최근의 한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거의 모든 활동(도시화, 벌채, 항공, 사냥 등)이 그들의 생존을 어렵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동물들이 살아남기 위해 계속 이동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이동으로 인해 먹이와 거처, 번식의 상대를 구하는 방식들이 모두 바뀌었다는 것이다.
2019년 말 우간다에서 기린들을 한 서식지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살게 하는 실험이 있었다. 우간다의 북서쪽에 나일강이 폭포가 되어 떨어지는 머치슨폭포(Murchison Falls) 국립공원이 있는데, 여기에 살고 있던 기린들이 트럭에 실려 북동쪽에 위치한 피안우페(Pian Upe) 보호구역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는 과거에 주민들의 분쟁과 밀렵으로 기린이 멸종되었고, 그렇게 된 지 26년 만에 그 땅을 동물들에게 다시 돌려주는 계획이었던 것이다. 마을 주민들이 나와 손을 흔들며 환영을 하였고, 천장이 뚫린 트럭 위로 솟아 있는 기린들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겁에 잔뜩 질려 있었다. 마침내 차에서 내린 기린들이 아카시아 잎을 발견하고는 뜯어먹기 시작했고, 그 모습에 바라보는 사람들의 긴장도 풀렸다.
인간들도 동서고금을 통해 더 나은 삶과 환경을 찾아 끊임없이 이주했고, 어떨 때는 평생 살아온 고향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우간다에서 독재자 이디 아민이 집권하던 1972년에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뿌리를 내리고 살던 7만 명가량의 인도인들이 추방되었다. 이후 영국에서 새 삶을 시작한 어느 인도인의 이야기를 손녀(Neema Shah)의 입장에서 듣고 쓴 책 ‘코롤로 힐(Kololo Hill, 2021)’은, 익숙한 고향에서 ‘뿌리가 뽑힌다(uprooted)’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훌륭하게 묘사한다. 1991년도의 영화 ‘미시시피 마살라(Mississippi Masala)’는 우간다에서 쫓겨난 한 인도 가족이 미국에서 다시 인생을 시작하는 여정을 보여준다.
추방, 전쟁 등의 이유로 고향을 떠나야 하는 이들을 받아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는 것은, 내가 어려울 때 남의 도움이 간절해지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움직임이다. 살던 정든 곳을 떠나는 슬픔과 함께 타향에서 적응하고 살아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아프가니스탄을 떠나 한국에 도착한 이들의 얼굴에서 불안과 안도, 절망과 희망이 동시에 느껴진다. 마치 뿌리가 옮겨지고 밑동이 잘렸지만, 아픔을 뚫고 다시 돋아나는 아보카도의 새싹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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