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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문재인 정부에서 부작용을 감당하기 어려워 결국 기조를 변경한 정책은 한둘이 아니다. 최저임금 정책은 집권 전반기만 해도 하늘이 두 쪽 나도 물러서지 않을 것처럼 위세를 떨쳤다. 불경기에 임금 부담까지 늘면 서비스업 부문의 고용에 타격이 예상되니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달았으나 ‘소 귀에 경 읽기’였다. 그 결과 집권 첫해인 2017년 16.4%, 이듬해 10.9%로 기세 좋게 치솟던 최저임금 인상률은 지난해 2.9%와 올해 1.5%로 급락하며 냉·온탕을 오가게 됐다.
▦ 부동산 정책도 마찬가지다. 강력한 투기억제책은 불가피했다. 하지만 실수요에 맞춘 공급책이 병행됐어야 했다. 그럼에도 “공급엔 문제가 없다”는 잘못된 판단에 근거해 재개발·재건축을 완전 봉쇄하는 실책을 저질렀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 뒤늦게 ‘2·4 대책’이니 뭐니 획기적 공급책이라며 내놨으나 그마저 작동하지 않자, 이젠 분양가상한제 완화니 오피스텔·빌라 규제완화니 하며 변칙공급책까지 동원해 실패 수습에 진땀을 빼고 있다.
▦ 개혁에서 저항을 극복하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현실을 도외시한 원리주의만으론 개혁은커녕 엄청난 부작용과 국민 고통만 빚기 십상이다. 따라서 정책 일관성에 유의하되 늘 현실적 유연성을 함께 갖추는 게 절실하다. 현 정부가 아직도 비합리적인 고집을 부리고 있는 또 하나가 에너지전환 정책이다. 정권 초 요란스레 ‘탈원전’을 홍보하며 추진한 탓인지, 비판과 보완 요구가 잇달아도 묵묵부답으로 버티는 모습이다.
▦ 그간 탈원전 정책 비판의 골자는 친환경 발전 속성상 전력수급이 불안해질 수 있다는 점, 관련 기술의 미성숙으로 인한 비용 부담 등을 감안해 과도적으로라도 원전을 좀 더 활용하는 게 낫다는 주장 등이다. 지적대로 최근 유럽에 이어 국내에서도 풍력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의 수급불안으로 천연가스 등 원자재 가격과 전기료가 뛰고 전반적 인플레이션을 부르는 ‘그린플레이션’ 조짐이 본격화하고 있다. 탈원전이 신성불가침이 아니라면, 더 늦기 전에 신한울 3·4호기 공사 재개 등 보다 현실적인 정책전환을 검토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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