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한은이나 미 연방준비제도(Fed) 등 각국 통화당국의 제1 정책목표가 물가안정인 건 인플레이션 부작용이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봉급 생활자만 해도 같은 급여를 받아도 물가가 오르면 실질소득이 깎이게 된다. 부동산이나 귀금속은 물가상승에 따라 함께 가격이 오르기 때문에 부자들은 피해가 덜해 빈부격차도 커진다. 화폐가치 하락은 저축 감소를 거쳐 투자 위축을 부르고, 국내 상품가격 상승으로 수출이 감소하고 수입이 늘어 국제수지가 악화한다.
▦ 1960~70년대는 인플레이션 시대였다. 미국에선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달러의 금태환 정지를 선언한 1971년을 전후해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14%까지 치솟았다. 우리나라도 고도성장에 따라 물가가 앙등해 1963~1964년엔 2년 연속 물가상승률이 20%를 넘었다. 박정희 정부는 1965년 ‘금리현실화’ 조치로 시중은행 정기예금 금리를 연 15%에서 30%로 높이는 극약처방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1970년대엔 또다시 물가상승률이 30%를 넘기도 했다.
▦ 국내 물가가 안정궤도에 들어서고, 그에 따라 정책적 부담도 줄어든 건 2012년부터다. 1997년 외환위기 이래 우리 경제가 차츰 안정성장세로 접어들면서 한은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목표치는 2013~2015년 2.5~3.5%로 설정됐고, 2016~2018년 목표치는 다시 2%로 낮아졌다. 잠재성장률 둔화와 고령화 등 인구구조의 변화, 글로벌 가격경쟁 심화로 수요와 공급 양 측면에서 물가상승 압력이 약화됐다는 게 한은의 분석이었다.
▦ 2019년 9월엔 사상 처음으로 물가가 0.4% 하락하기도 했다. 물가안정은 저성장과 소득정체 속에서도 민생의 버팀목이 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10년간의 물가안정세를 뒤흔드는 인플레이션 조짐이 심상찮다. 지난 9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2.5%를 기록해 6개월째 2%대 상승을 지속했다. 문제는 이 같은 상승세가 글로벌 친환경 발전정책 등의 차질로 되레 석유와 석탄 등 기존 에너지가격이 앙등하면서 빚어진 상황이라 추세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불황에 인플레이션까지 덮치는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증폭되고 있어 걱정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