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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차이나미션센터의 신설을 최근 언론에 공개했다. 외교·안보의 중심이 중동에서 중국으로 분명하게 이전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동시에 CIA 역량이 점점 적대적인 중국에 집중될 것임을 예고하는 수순이다. 윌리엄 번스 국장은 중국을 21세기 미국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지정학적 위협이라고 했다. 미국의 위기감은 급박해 보이나 가치, 생각이 다른 중국을 이해하는 데는 꽤 긴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냉전시대 소련 정보역량 구축에도 수십 년이 걸렸다.
□ 무엇보다 첩보망 붕괴로 CIA는 중국 정보 취득에 어려움이 크다. 중국은 2010년부터 CIA 정보원 수십 명을 색출해 살해하거나 수감시켰다. 작년에는 청두 미 영사관을 폐쇄시켜 중국 중서부 정보망을 흔들어놨다. 중국 공세에 CIA는 두더지(이중 스파이)가 있다거나 해킹을 당했다는 논쟁을 벌였다. 중국 도처에 설치된 CC(폐쇄회로)TV와 첨단 얼굴인식도 휴민트(인적 정보)에 의존하는 CIA를 위축시키는 요인이다.
□ 역대 미국의 실패는 CIA 무능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았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의 화학무기에 대해 잘못된 브리핑을 받았다. 호전적이던 부시는 이라크 전쟁의 명분을 CIA 오판에서 찾았다. 린든 존슨 대통령이 베트남 전쟁의 미국화를 결정하기까지 막후에도 CIA의 잘못된 평가가 있었다. 쿠바 미사일 위기까지 부른 정보의 실패는 더 극적이다. 취임 100일도 안 된 존 F 케네디 대통령에게 CIA는 피그만 침공작전을 실행하면 쿠바 민중이 봉기할 것이라고 호언했다. 피그만 상륙 3일 만에 작전은 실패로 끝났고 상황은 냉전 최대 위기로 치달았다.
□ 정보기관의 잘못된 정보는 이처럼 대통령의 실패를, 국가의 재앙을 가져온다. 정보 실패의 이유에는 정보 부족도 있겠지만 정보 판단자의 잘못은 더 크다. 정보기관 지도자들이 정치적 배경 속에 임명되고, 이들은 임면권자가 듣기 싫어하는 정보나 평가를 제공하지 않게 된다. 이론(異論)이 허용되는 집단지성이 아닌 토론이 없는 집단사고에 빠져들어 위기를 자초하는 것이다. CIA의 극중지계(克中之計)를 평가하기에 이르지만 때맞춰 대만해협 긴장이 높아지는 건 긍정적 신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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