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도시로 여행을 갔다. 그런데 택시 탈 때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어떨까? "성인도 보호자가 있어야 택시를 탈 수 있어요." "택시 타기 전에 신분증 사본과 신청서, 개인정보동의서, 건강검진증명서 제출하세요. 택시 타기 10일 전에 내시고요. 심사결과는 알려 드리겠지만 안 될 수도 있어요. 소득증명서를 내면 할인해 드릴 수 있어요."
더러워서 택시를 안 타고 말겠다는 이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대한민국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휠체어를 태울 수 있는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할 때 생기는 일이다. 지자체가 콜택시를 각각 따로 운영하고 항상 대수가 모자라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그냥 내 돈 내고 말겠다고 하더라도 '내 돈 내고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없다면 어떨까? 대중교통이 대도시에 비해 부족하고 게다가 휠체어로 접근 가능한 대중교통수단 자체가 없는 대부분의 소도시에서는 외지인이 장애인 콜택시를 탈 때 저런 식의 요구를 하게 된다.
시설 자체가 적으니 지역 주민과의 형평성을 생각해 여러 가지 증빙서류를 받는 건 어쩔 수 없다 치자. 하지만 심사 기간이 수일이 넘게 걸린다든지 '보호자(장애인의 활동을 돕는 사람을 '보호자'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장애인들에게는 매우 모욕적인 일이다)' 탑승 없이는 단독으로 이용 불가능하다는 식의 접근은 행정편의주의적이거나 인권 침해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아이가 휠체어를 타고 나가면 주로 나이든 분들이 이런 말을 많이 한다. "요즘 세상이 참 좋아졌어. 이렇게 좋은 기계(휠체어)도 생기고. 장애인 이용시설도 많고. 장애인들 대접 많이 받잖아. 감사하게 생각해." 이 말엔 '장애인의 이동과 외출은 감지덕지한 것. 고마워해야 한다'는 정서가 깔려 있다.
우리나라에서 장애인 복지는 주로 '시혜적'인 차원에서 이뤄진다. 1981년 심신장애자복지법이 처음 만들어진 후 1989년 '장애인복지법'으로 개정됐다. 법명에서 암시하듯 장애 당사자를 권리의 능동적 주체로 규정하기보다 복지의 대상이자 수혜자로 규정했다. 장애인들에게는 '복지가 주어짐', 또는 '갇혀 있음. 정당한 권리를 누리지 못함'이 기본값으로 읽힌다. 장애인 혜택을 주로 '할인'으로 접근하는 것도 같은 논리다. 물론 할인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휠체어 이용자들에게 주차할인을 해 주는 것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시혜적 차원이 아니라, 대중교통수단이나 일반 택시를 탈 수가 없어서, 또는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불편해서, 즉 인프라를 잘 깔아놓지 않아 접근할 권리와 이동할 권리를 보호하지 못한 데 대한 보상이어야 한다. 놀이공원에 장애인이 탈 수 있는 놀이기구가 없고, 문화재에 접근이 안 되는 상황에서 그 '할인'은 의미는 없다.
장애인들이 응당 누릴 권리를 '호의'로 해석해왔던 기존 법리 틀을 바꾸는 작업이 시작됐다. 9월 말 장혜영 정의당 의원을 비롯해 국회의원 10여 명이 '장애인권리보장법'을 발의했다. 장애인을 시혜의 대상이 아닌 권리의 주체로 봤다는 점에서 장애인에 대한 시각을 180도 바꾼 법령이다.
영화 '은교'의 대사가 생각난다. 주인공 노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너의 젊음이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 또한 죄로 받은 것이 아니다." 건강은 상이 아니다. 장애 또한 죄가 아니다. 시민으로서 누릴 권리를 보장할 법이 이번 국회 회기에 꼭 통과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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