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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현시점에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토론회의 승자는 홍준표 후보인 듯하다. 막말과 성차별 발언 전력으로 상처 입지 않고 지지율이 올랐다. 윤석열 후보는 예상과 달리 정책 역량이 아닌 무속 논란 등으로 고전했다. 15일 두 후보의 맞수토론에선 홍 후보가 도덕성을 따지고 윤 후보가 정책 토론을 요구했다. 윤 후보는 무상급식,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 여성할당제 등에서 홍 후보가 오락가락한 점을 공략했으나 반박 능력이 부족해 홍 후보의 해명만 듣고 끝났다.
□ 홍 후보는 공격을 받으면 눙치기로 피하고 반문으로 역공한다. 11일 토론회에서 원희룡 후보가 “매년 3%씩 성장해도 임기 내 국민소득 5만 달러는 불가능하다”고 공약 허점을 짚자 홍 후보는 “계산 안 해 봤다”며 웃어 넘겼다. 원 후보는 “정부별 평균 성장률이 1%포인트씩 하락해 지금 2%인데 어떻게 3%로 올리느냐” “일감 없이 고용주도성장이 가능한가”라고 이어 물었다. 이 중대한 질문을 홍 후보는 “원 후보는 그렇게 해서 제주도 경제가 좋아졌냐”라고 떠넘겼다. 홍 후보의 당대표 시절을 비판한 윤 후보에겐 “그때 당신은 뭐했냐”라고 역공했다.
□ 맥락 자체를 허물어 예상을 뒤엎음으로써 고조된 긴장을 터뜨리는 것은 유머·개그의 기술이다. 홍 후보의 엉뚱한 답변에 시청자나 질문한 사람마저 종종 웃음을 터뜨리는 이유가 그것이다. 이렇게 해서 홍 후보는 인간적이라는 평을 얻었을지 모르나 대선 토론회가 다뤄야 할 중요한 이슈를 묵살하고 예능화한다. 핵공유, 경제성장, 연금개혁 등을 놓고 내실 있는 토론을 벌인 것은 유승민·원희룡 후보의 맞수토론이었으나 대중의 관심은 '재미있는' 쪽으로 쏠렸다.
□ 2017년 대선 때 비호감도가 극에 달했던 홍 후보가 2022년 대선을 앞두고 20대가 선호하는 후보가 된 것은 어쩌면 세상이 달라진 탓이다. 여당 인사 등 기득권층의 위선과 내로남불에 질린 유권자들은 홍 후보를 솔직하고 유머러스한 사람으로 보기 쉽다. 국민의힘이 젠더 갈등을 이용하는 국면이다 보니 그의 성차별적 인식도 큰 흠으로 부각되지 않는다. 미래지향적 정치, 보수의 변화를 기대하는 유권자에겐 씁쓸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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