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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정치의 유혹

입력
2021.10.20 00: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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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인구 증가로 정치적 영향력 확대
노인정치화, 재정지출 왜곡 낳을 수도
아동과 청년 위한 지원 투자 절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역사적인 사례들은 노동계급, 유색인종, 여성 등 참정권을 갖지 못했던 집단이 경험했던 불이익과 이로 인한 국가적 폐해를 잘 보여준다. 전체 성인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오늘날에도 모든 국민의 정치적 영향력이 동일하지는 않다. 규모가 큰 동질적 집단은 소수자들에 비해 정치적으로 더 잘 대변되는 경향이 있다.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이 갖는 공통의 이해와 요구가 존재하는 만큼, 같은 연령층의 인구 규모도 정치적 영향력을 결정하는 요인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멀리건과 살라이마틴은 '노인 정치(gerontocracy)'에 관한 한 논문에서 인구 고령화가 고령인구의 정치적 영향력 강화를 통해 이들에게 유리한 방향의 정책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들에 따르면 시간의 기회비용이 상대적으로 낮은 고령자들은 더 적극적으로 정치적 활동에 참여한다. 또한 누구나 나이가 든다는 사실 때문에 고령자들은 정치적인 연대를 형성하는데 유리한 위치에 있다. 이러한 이유로 고령인구 증가는 비례 이상으로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실증분석 결과는 인구고령화가 고령층을 위한 정부 지출 비중을 높였음을 보여준다. 일부 선진국에서 추진된 연금 및 세제 개혁이 정치권의 고령 유권자 눈치 보기 때문에 지지부진하다는 지적도 이 연구의 주장과 맞닿아 있다.

인구 변화로 인한 '노인 정치' 강화는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날 개연성이 높다. 통계청 추계에 따르면 현재 16%인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20년 후 34%로 증가할 것이다. 고령인구의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 수준도 높아지고 있어서 능동적인 정치 참여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고령 빈곤이 심각하고 노후소득 보장이 상대적으로 취약해서 고령자를 위한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릴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고령자들의 삶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인구변화에 의한 '노인정치' 강화의 가능성은 우려되는 면이 있다. 아동과 청년에 대한 지원과 투자는 특정 계층에 대한 배려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수많은 연구 결과가 보여주듯이 개인의 삶에 대한 공공정책의 개입은 이른 나이에 이루어질수록 효과성이 높다. 미래의 인구 변화와 경제적 성과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도 결국 아동과 청년인 만큼, 이들의 삶의 질과 인적 자본을 개선하는 노력은 궁극적으로 고령층의 노후 보장 강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아동과 청년 인구가 희소해지면서 이들의 가치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청년인구 감소와 함께 이들의 고용여건이 개선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인구변화가 가져올 수 있는 정치환경의 변화를 고려하면, 아동과 청년이 대접받는 사회로의 전환은 그리 확실하지 않다. 청년 인구와 자녀를 가진 부모가 전체 유권자, 직장의 피고용자, 지역사회 구성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빠르게 줄어들 것이다. 이미 평형을 잃은 아동·청년층과 중·고령층 간 정치적 힘의 균형은 더 심하게 기울어질 수 있다. 최근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는 청년에 대한 관심과 배려의 움직임도 얼마나 더 정치적인 득실의 유혹을 견딜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소중한 자산인 아동과 청년을 배려하고 이들을 위한 지원과 투자를 강화하자는 두루뭉술한 립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렇지만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실효성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양보와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국민을 정직하게 설득하는 일은 진정한 능력과 용기를 요구한다. 깊어가는 이 선거의 계절, 그러한 능력과 용기를 보여주는 후보의 출현을 기대해본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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