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첫 여성 총리 앙겔라 메르켈이 4연임 16년 만에 물러난다고 한다. 67세다.
정치인의 퇴장은 어느 나라나 거의 예외 없이 쓸쓸하다. 국민의 신임(선거)을 받지 못했거나, 비리에 연루돼 중도 사퇴했거나, 레임덕에 빠져 쫓기듯 관저를 나서거나, 퇴임사를 하는 얼굴에 후에 닥칠 일을 걱정하는 수심이 드리워져 있거나.
그러나 메르켈은 아니다. 스스로 물러난 첫 독일 총리다. 임기 말 지지율이 70~80%라니 얼마나 행복한 귀가인가.
좀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그가 남성이었다면 이렇게 명예로운 퇴장을 할 수 있었을까? 독일에는 '메르켈른(merkeln)'이라는 말이 있다. '메르켈스럽다'라는 뜻이다. 조용함과 신중함, 권위보다 소통, 선동보다 설득, 독단보다 합의, 유연함과 강인함을 겸비한 메르켈 스타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의 리더십에 대한 독일 언론의 수많은 분석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있다. "메르켈은 권력을 가진 것을 특별하지 않은 일로 바꿔 놓았다. 그는 권력을 과시하지 않았다. 그게 그의 가장 큰 힘이었고 그를 위대하게 만들었다."
복잡한 정치 외교는 빼고 한 지도자로서, 한 여성으로서의 메르켈의 인간적 면모를 쓰고 싶다.
-화장기 없고 이발소에서 싹둑 자른 듯한 쇼트커트 헤어 스타일, 항시 같은 디자인의 박스 모양 재킷에 벙벙한 검은 바지, 뭉툭한 단화. 독일 사람들은 그 차림을 총리의 유니폼이라고 불렀다. 메르켈은 “머리를 매만질 시간이 없으니 한 번 만진 머리는 열두 시간 이상 버텨줘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동시대 라이벌 여성 지도자였던, 호피 무늬 하이힐과 징 박힌 롱부츠, 도발적 드레스를 즐겨 입은 패셔니스타 테리사 메이 전 영국 총리와 비교됐다.
-2008년 노르웨이 오슬로 오페라하우스 개관 기념공연에 초대받았을 때, 메르켈은 놀랍게도 가슴과 등이 깊게 파인 검은 이브닝 드레스에 푸른 숄을 걸치고 왔다. 대중 매체에서 난리가 났다. '드디어 가슴선을 보여준 총리' '메르켈의 대량 살상무기'라는 선정적 제목이 달렸다. 다음 날 총리 대변인이 전한 총리의 반응은 이렇다. "세상에는 드레스보다 중요한 일이 많다."
-메르켈은 관저에서 살지 않는다. 화학과 교수인 두 번째 남편과 베를린 시내 작은 아파트에서 출퇴근한다. 주말이면 여느 주부들처럼 장바구니를 들고 동네 슈퍼마켓에서 장을 본다. 주인도 이웃들도 놀라지 않는다. 휴가를 갈 때 퍼스트 젠틀맨은 민항기로 따로 간다.
-메르켈은 연설을 하거나 대화할 때 두 손을 배 위에 가지런히 모으고는 엄지와 검지를 마름모 모양으로 깍지 끼는 특이한 버릇이 있다. 그걸 '메르켈 다이아몬드(Die Merkel-Raute)'라고 부른다. 메르켈 리더십의 상징적 제스처라고 언론이 나름대로 해석을 붙였다.
-메르켈은 물리학자이지만 인문학적이다. 러시아어에 능통한 문학 애호가로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체호프를 탐독한다. 매년 여름 거의 유일한 공식적 부부 동반으로 바그너 오페라 축제에 참석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이번 여름에도 언론은 '오페라의 유령'이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그의 퇴장을 보며 문득 괴테의 대작 '파우스트'의 마지막 구절이 생각났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끄노라.' 과장된 연상이라 해도 좋다.
굿바이 메르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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