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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이 된 서울의 청년들

입력
2021.10.2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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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4월 신촌거리에서 열린 마지막 거리유세에서 지지 연설에 나선 한 청년의 손을 잡고 무대에 오르고 있다. 오대근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4월 신촌거리에서 열린 마지막 거리유세에서 지지 연설에 나선 한 청년의 손을 잡고 무대에 오르고 있다. 오대근 기자

여기, 달달한 연애 중인 커플이 있다. 뉴스에서 나오는 성추행 사건을 보며, 여자친구가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자 남자친구가 의젓하게 말한다.

"걱정 마! 넌 내가 지켜줄게!"

"네가 어떻게 나를 지켜. 365일, 24시간 따라다니면서 지킬 거야?"

"내가 없을 때는 일찍 일찍 다니고, 어두운 길 피해서 다니면 되지!"

남자친구는 논리적인 대답을 내놓은 것 같아 뿌듯하지만, 여자친구의 표정은 어둡다. 그녀에게 필요한 건 전쟁터에서 그녀를 지켜줄 왕자님이 아니라, 밤늦게 돌아다녀도 안전한 사회니까. 남자친구가 있어야'만' 안전한 거리가 아니라, 혼자서도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골목을 원하니까.

남자친구의 듬직한 어깨 너머로 오세훈 서울 시장의 청년 정책이 겹쳐 보인다. 서울시는 지난 27일, 청년들에게 연간 최대 10만 원의 대중교통비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혼자 사는 청년이 이사하면 40만 원의 이사비 바우처도 지급하고 희망청년 통장도 늘린다고 한다. 오 시장은 취임식에서부터 '2030 청년 세대가 희망을 가지는 청년 서울을 만들겠다'라고 공약한 바 있다. 교통비와 이사비를 지원해준다 하니, 그의 공약은 잘 지켜지고 있는 거라고 봐도 되는 걸까?

지난 26일 서울시청 앞에서 428개의 노동, 시민, 지역사회단체가 오 시장의 노동, 민생, 시민참여 예산 삭감 시도를 중단하라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들에 따르면 서울시는 마을지원종합센터, NPO센터, 민주주의센터 등 사업 예산의 70%, 노동권익센터, 노동복지센터 등 예산의 60~100%를 삭감했다. 청년 분야 예산도 50%, 사회적경제 예산도 45%, 혁신분야 예산도 30% 줄일 것을 통보했다고 한다. 지난 국정감사에서는 서울시가 2015년 도입 이후 처음으로 따릉이를 신규구매 하지 않기로 한 사실이 드러나, 시민들 사이에 '따릉이 지키기' 물결이 일기도 했다.

청년과 노동, 시민참여 예산이 대폭 삭감되는 지금, 서울시의 교통비와 이사비 지원은 세뱃돈을 뺏고 대신 사탕을 물려주던 삼촌을 생각나게 한다. 서울시는 1인 가구 포털을 만들어 도어 카메라를 현관문에 설치하고, 여성 대상 범죄 예방 보안관을 만들고, 위급 상황 시 긴급 출동 서비스를 요청할 수 있는 안전 도어 지킴이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여자친구를 위험한 세상으로부터 지켜주겠다는 남자친구의 마음이 보인다. 그러나 그 구체적이고 좋은 제안들이, 청년·노동·시민 참여 예산 삭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정중히 그 말에서 내리고 싶다.

'고명딸'이라는 단어가 있다. 음식에 맛을 더하고 모양과 색을 돋보이게 하는 고명처럼, 여러 아들 사이에 예쁘게 얹혀 있어 사랑스러운 딸이라는 뜻이다. 언뜻 들어보면 딸을 귀하게 여기는 말 같지만, 실은 딸은 양념이나 고명처럼 구색 갖추기로 하나 정도만 끼어 있어야 좋다는 속뜻이 있다. 서울시가 청년을 바라보는 모양새가 꼭 고명을 바라보는 듯하다. 정부정책부터 지자체의 활동까지, '청년'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으면 밍밍한 국이라도 되는 것처럼 너도나도 청년을 정책에 양념처럼 뿌린다. 그러나 청년은 고명일 뿐이다.

예산 삭감은 바로 눈에 띄지는 않지만, 당장의 현금 지원은 작은 글씨로 써도 크게 보인다. 입에 문 사탕의 맛이 너무 달콤해서, 삼촌이 빼앗아 간 세뱃돈은 나중에 생각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밤길을 지켜주겠다는 든든한 남자친구에게 희망을 걸고, 어두운 거리를 밤늦게 혼자 쏘다닐 수 있는 권리는 접어두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자꾸 '고명'이 되어간다. 당신도 고명 청년인가?



박초롱 딴짓 출판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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