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하거나 신혼일 때는 대부분 집 안에 물건이 많지 않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물건은 점점 늘어난다. 물건이 많다고 느꼈을 때는 이미 내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물건이 들어찬 상태일 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빈 공간을 보면 무언가로 채우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다. 잠깐 긴장을 늦추는 순간 어느새 빈 공간은 물건으로 가득차게 되는 경험을 다들 해보았을 것이다. 대형마트의 쇼핑카트가 큰 이유도 어쩌면 소비자가 그 커다란 카트를 채워야만 제대로 쇼핑을 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하려는 의도일 수 있다.
나는 쇼핑하러 가기 전 미리 구매목록을 작성해 목록에 있는 물건만 구입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도 쇼핑을 하면서 다른 사람과 비교되는 내 카트를 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쇼핑을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내가 모르는 할인상품이 있는 건 아닌지, 신경이 온통 다른 사람의 카트에 쏠릴 때도 있다. 하지만 정리전문가로서 10년을 살아오면서 나의 쇼핑 패턴은 필요에 의한 구매를 하고, 집에 도착해서 그날 구입한 물건은 바로 정리하는 습관을 들였다. 집 안에 물건의 자리를 정하고, 필요할 때 물건을 구입하여 제자리에 넣으면 되는, 이론상으로는 너무도 간단한 행동을 습관으로 만들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오래 전 홈쇼핑 텔레마케터 고객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는 홈쇼핑 상담을 하면서 좋아 보이는 제품을 하나씩 구입했다고 했다. 현관 입구를 꽃게처럼 옆으로 지나 들어갔을 정도이니 얼마나 많은 물건이 있었는지 상상이 갈 것이다. 정리를 시작하려는데 주방 옆 방문이 열리지 않는 난관에 부딪혔다. 아주 조금 열린 틈으로 본 내부는 뜯지도 않은 새 택배상자가 가득 쌓여 있었고, 바닥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겨우 비집고 들어가 물건을 꺼내며 힘겹게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세상에! 방 안에 피아노가 있는 게 아닌가! 작은 물건도 아니고 이렇게 큰 피아노가 있었다는 것을 몰랐던 우리는 깜짝 놀랐고, 그 고객은 드디어 피아노를 칠 수 있게 됐다며 좋아했다.
물건을 구입할 때는 좋아 보여서가 아니라, 사용하기 위해 사야 한다. 또 앞으로 사용할 것과 현재 사용 중인 것으로 구분해야 한다. 사용할 것이라는 확신 없이, 언젠가는 사용할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나 예상으로 보관하는 물건이 많을수록, 공간이 좁아지면서 정리는 더욱 힘들어진다. 따라서 물건을 구입할 때는 그 물건을 사용함으로써 생활이 편리해지는지 생각해야 한다. 좋아 보인다는 이유로 목적 없이 구입하면 결국 짐이 되고 덫이 될 수 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속담이 있다. 얼마 안 되는 손해나 양보는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아도 그것이 거듭되다 보면 패국에 이른다는 뜻이다. 조금씩 사놓은 물건들이 쌓여서 좋아하는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되는 것은 얼마나 큰 손해인가! 혹시 내 주변에도 숨바꼭질하고 있는 물건이 있는 건 아닌지 잘 살펴보길 바란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