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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대원들은 왜 농장으로 갔을까

입력
2021.12.17 00: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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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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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크고 작은 긴급한 상황에 119를 누른다. 전화기 너머의 소방관이 즉시 내가 있는 곳으로 달려와 나를 구해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를 지켜주는 소방관이 위험에 빠진다면 누가 그들에게 도움의 손을 내밀 것인가.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서울에서만 접수된 신고 건수가 1일 평균 5,000건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부족한 소방 인력 때문에 현재 소방관의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50시간 이상으로,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또한 최근 10년간 50명이 넘는 소방관이 순직했는데, 더 놀라운 것은 순직한 소방관보다 자살한 소방관의 수가 더 많다는 사실이다. 3명 중 1명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앓고 있으며, 스트레스 지수도 일반인보다 최소 5배 이상 높게 나타난다. 이는 경찰, 해경 등 다른 직군보다 심각한 수치다.

우리는 다른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순직 소방관에게 ‘영웅’이라는 칭호를 붙이며 애도와 감사를 전하지만, 실제로 많은 소방관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고통을 받고 있다. 다른 이들을 위해 마주한 많은 현장에서 참혹한 일을 겪고, 불안과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그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육체와 정신의 회복이다.

이에 대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던 국내의 여러 지역에서 직업적으로 스트레스가 크다고 알려진 소방관을 위한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치유농업'은 농업·농촌의 자연환경을 활용하여 정신적·육체적 건강을 회복하는 활동으로, 해외에서는 '케어파밍(Care Farming)'이라 불리고 있다.

과학과 문명이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쉼'을 위해 자연을 찾는다. 이러한 인간의 심리를 이용한 치유농업을 국내에 활성화하고자 경기 안성시에 위치한 국립한경대학교는 소방관을 대상으로 '심심한(心審閑:마음심,살필심,한가할한) 치유농업'을 개최했다. 참가자들은 이틀 동안 직접 농산물을 수확하며 자연과 함께하는 여유롭고 따뜻한 프로그램을 통해 일상에서 받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었다.

충남 금산군에서는 '빨간 우체통' 치유농업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소방관들은 서대산 둘레길을 산책하며 자연을 감상하고, 금산 명물 인삼을 이용해 직접 음식을 해 먹기도 했다. 아로마 테라피와 도자기 체험, 약초 캐기 등을 통해 힐링의 시간도 가졌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꽃 상자 만들기'였는데, 자신의 인생을 꽃 상자에 빗대어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지쳐 있던 마음을 함께 다독이고 위로하는 시간이었다. 한 대원은 자신의 아내에게 직접 만든 꽃 상자와 따뜻한 커피 한잔을 건네고 싶다며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실제로 농촌진흥청은 치유농업의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소방관을 대상으로 치유농업을 진행한 뒤 참여 소방관들의 뇌파를 분석했다. 그 결과, 심신 안정과 신체 이완 등 긍정적인 지표는 51% 상승하고, 긴장과 같은 부정적인 지표는 10% 감소했다. 또한, 스트레스 호르몬은 이전보다 23%나 줄어들었다.

한국의 농촌이 이제 먹거리 생산뿐만 아니라 힐링과 치유의 공간이라는 새로운 가치로 부상한 만큼, '한국형 치유농업 모델' 개발이 필요하다. 소방관뿐만 아니라 노약자와 장애인 등 몸과 마음이 지친 모든 이들에게 자연의 쉼을 전달하는 포근한 농촌을 그려보며, 더 많은 사람들이 농촌에서 위로받기를 기대한다.


민승규 국립한경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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