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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에도 뿌리칠 수 없는 배달료 유혹

입력
2022.01.03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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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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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집 근처 도로가에 오토바이를 세우려는 순간 쓰윽 미끄러졌다. 빙판길에 오토바이가 스케이트를 탄 것처럼 도로 한가운데로 밀려 난 것이다. 안간힘을 쓰며 버텼는데, 뒤쪽에서 황색 불빛이 번쩍였다. 뒤따라오던 커다란 버스가 차선을 바꿔 지나갔다. 넘어졌다면, 병원에서 이 글을 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놀란 마음에 이번 배달만 마치고 앱을 끄기로 마음먹었다. 운행 종료를 누르려고 휴대폰을 보는데 주문폭주, 배달단가 인상 등의 알림이 계속 떴다. 이대로 집에 가기 너무 아까워 오토바이를 길가에 세워두고 도보배달로 바꿨다. 빙판길에 넘어지지 않게 조심조심 골목길을 걸었다. 쌓인 눈을 튀기며 아슬아슬하게 오토바이가 지나가기도 하고, 주차장 관리 경비노동자가 자전거를 끌고 가다 넘어지기도 했다. 우리의 공장이 하얀 눈으로 뒤덮였다.

하늘에서 눈이 내리면 라이더들은 우산장수와 짚신장수 아들을 둔 어머니의 심정이 된다. 배달 주문량은 느는데 라이더 숫자는 줄어드니 내리는 눈이 돈처럼 보여서 좋기도 하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사고 소식과 얼어붙은 바닥을 보며 불안하기도 하다. 이때 배민, 쿠팡에서 보내는 배달료 급상승이라는 어플 알림을 보면 마음이 흔들린다. 이 두 회사는 휴대폰 화면 지도 위에 실시간으로 변하는 배달료를 띄워 라이더에게 보여준다. 마포1은 8,030원으로 마포2는 1만30원, 마포3은 9,030원으로 부동산 시세와 주식 차트를 합쳐놓은 듯한 배달앱의 숫자를 보고 있으면 내가 발 딛고 있는 땅이 온통 돈 세상으로 변한다. 목돈을 가진 사람은 주가가 오를 것 같으면 터치 한 번으로 매수 주문을 넣겠지만, 우리는 실시간으로 변하는 배달료에 터치 한 번으로 몸뚱아리를 밀어넣는다.

플랫폼 기업은 실시간 데이터로 노동력을 바로 매수·매도할 수 있다. 1만 원도 던져보고 1만5,000원도 던져봤다가 배달노동자가 너무 많이 나오면 가격을 떨어트리고 너무 적게 나오면 가격을 올려 노동자가 위험을 무릅쓰고 접속하는 최적의 가격을 파악한다. 이를 '유보 임금'이라 부른다. 물론 작은 동네 배달대행사 사장은 배달료가 아니라 언성을 높일 것이다.

이 배달료 체계에서는 폭설에는 배달을 멈추자고 주장하기 어렵다. 높은 배달료를 받을 수 있어 바짝 벌 기회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윤'을 기준으로 보면 완벽한 수요·공급이다. 반대로 '안전'을 기준으로 배달료 체계를 짤 수도 있다. 충분한 소득을 보장할 수 있도록 기본배달료를 높이고 위험한 날씨에 제공되는 지나친 프로모션을 낮춘다면 '안전'을 기준으로 수요·공급을 만들 수 있다. 폭설에는 배달을 시켜도 늦게 오고, 일할 사람도 없으니 포장서비스만 제공하거나 도보처럼 비교적 안전한 단거리 배달만 하는 게 상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노동자들과 우리 사회가 안전이라는 가치에 높은 가치를 매긴다면 폭설의 유보임금은 단순히 올라가는 게 아니라 돈으로 교환 불가능한 비매품이 된다.

누군가는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하고 밤낮없이 장시간 일하고 위험을 감수하고 일하는 게 개인의 선택이자 '자유'라고 주장한다. 틀렸다. 질 나쁜 일을 거부할 수 있는 게 '자유'이고 이 '자유'를 재산을 가진 소수의 사람만이 누리는 게 불평등이다. 우리가 자유와 경제적 평등 모두를 추구해야 하는 이유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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