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소한 경험이 나를 깨우쳤다. 카페에 갔다가 무의식중에 마스크를 벗은 채 커피를 시켰다. 종업원이 깜짝 놀란 듯 "마스크 써 주세요" 한다. 커피를 마시려면 어차피 바로 마스크를 벗게 될 텐데 지나친 과민반응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다 "아, 내가 이 사람을 두렵게 했구나"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동행한 분이 이 장면을 보더니 "무외시란 말 아세요? 불가에선 이게 제일 큰 보시랍니다"라고 말했다.
이제 좀 잠잠해지나 싶었다. 그런데 오미크론이란 변종이 와서 우리를 다시 힘들게 한다. 백신을 세 번이나 맞았어도 돌파감염 이야기가 나오니 불안하긴 매한가지다.
조심조심했어도 내 몸 안에 들어온 바이러스는 그냥 내 운수소관이라 치자. 정작 내 삶을 힘들게 하는 건 끝이 안 보이는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마음 바이러스다. 정작 무서운 내 적은, 우리 사회 공동의 적은 그게 아닌가 싶다. 마음 바이러스에는 백신도 없다.
'마인드 바이러스(Mind Virus)'는 엠에스 워드(MS Word)를 만든 미국의 리처드 브로디라는 사람이 1996년에 낸 유명한 책의 제목이다. 질병 바이러스처럼 사람들 마음 간에도 바이러스가 작동한다는 거다. 한 사람 또는 일부 집단의 감정이나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나 공동체의 사고방식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이다. 문화유전자 '밈(meme)'에서 출발한 용어다.
나나 타인의 행복이나 불안, 슬픔이나 분노, 무관심이나 선행(선한 영향력, 착한 임대료, 기부…) 같은 것이 '전염' 되는 걸 겪어 봤을 것이다. 행여 두려움 바이러스가 우세종이 되면 우리 공동체는 서로를 감시하고 비난하고 원망하기만 할 것이다.
마인드 바이러스의 백신을 '무외시'라는 단어에서 얻었다. 불가에는 세 가지 보시가 있다고 한다. 재물을 주거나(財布施), 지혜를 주거나(法布施), 두려움(畏)을 주지 않는 보시, 즉 무외시(無畏施)다. 이 가운데 으뜸은 무외시다. 재물이나 지식이나 재능이 없어도 베풀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도 어렵지 않은 보시가 무외시다. 나의 언행, 감정, 표정, 처신, 차림새 등이 남에게 두려운 마음을 심어 주지 않도록 하면 된다. 우울하고 화난 사람 옆에 있으면 누구나 불안해지듯, 내가 즐겁고 평화롭게 보이면 상대도 그렇게 된다.
불가에선 불상의 온화한 기운 그 자체가 무외시라고 한다. 어두운 밤길에 묵묵히 앞에서 걸으며 길을 터주는 것, 처음 만난 이에게도 선한 미소 한 번 지어주는 것, 문을 잡아 주는 것, 그런 것들이 무외시의 보살행이다. 카페의 알바생에게 나는 무외시를 못한 것이다. 내가 감염될까봐만 노심초사했다.
그런데 무외시는 베풂을 의식하지 않고, 선의에 대한 집착 없이, 보상에 대한 기대 없이 오직 빈 마음으로 해야 참다운 것이라 한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도 모르게 말이다.
커피 한잔, 밥 한 그릇, 영화 한 편, 물건 하나 사려 해도 짜증 난다. 나만 짜증 날까? 상대는 더 그럴 것이다. 나는 무외시라는 말에서 내 생각의 편협함을 각성했다. 그것이 바로 내 안의 두려움도 없애는 길이요, 우리가 함께 살길이라는 걸 깨달았다. 혜민 스님이 일찍이 말씀하셨거늘, 남을 위한다면서 하는 행위들은 사실은 나를 위한 것이라고.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앞으로 부처님 얼굴로만 다녀야겠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