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의 군 위문 편지 파장이 크다. 우선 경멸과 조롱의 위문 편지를 쓴 진명여고 학생은 경솔했다. 학교에서 위문 편지 쓰라는 일에 아무리 반감이 들었다 하더라도, 행동이 지나쳤다. 경멸과 조롱은 익명을 향해서라도 던져서는 안 되는 돌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주 실수하고 실패한다. 학생은 이번 실수를 좋은 교훈으로 삼길 바란다.
이번 사태의 핵심 문제는 반강제적 위문 편지다. 학교에서는 위문 편지가 학생들의 자율적 선택임을 강조했으나, 봉사 활동 점수와 연계했다는 점에서 그 자율성은 별 설득력이 없다. 여고생에게 군 위문 편지를 쓰게 하는 것은 사회가 이들을 ‘성적(性的) 자원’으로 동원하는 행위다. ‘사회적 대의’라는 순수함으로 아무리 포장하더라도, 이 불편한 진실을 숨길 수 없다. 위문 편지 쓰기가 남고생들보다 여고생들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위문 편지가 은근한 방식의 ‘성적 동원’이라는 것을 진명여고 교사들도 알고 있었다. 위문 편지 가이드라인에 “개인 정보를 노출하면 심각한 피해를 볼 수 있으니 학번, 성명, 주소, 전화번호 등 기재 금지”라고 돼 있다. 위문 편지로 인해 학생들이 성적 위험에까지 처할 수 있음을 숙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 군인들로부터 성희롱과 스토킹을 당했다는 사례가 곳곳에서 보고되고 있다.
더군다나 여고생은 미성년자다. 미성년자의 성에 대해선 사회가 특별히 보호한다. 하지만 학교는 관행의 이름으로, 학생들을 성적 불쾌감을 느끼는 자리에 밀어 넣었다. 지금의 성인지 감수성 기준으로 보면, 이 역시 성적 괴롭힘이다. 학생이 편지에 조롱을 담은 것은 그 불쾌감에 대한 반발이었을 것이다.
위문 편지 하나 가지고 뭐 그리 빡빡하게 따지냐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회식 자리에서 부장 옆에 여직원 앉히는 걸 보고도 아무 문제 의식이 없을 것이다. 많은 남자들은 어디서든 ‘조직의 꽃’이 되길 요구받는 여자들의 불쾌함을 이해하지 못한다. 왜 우리는 아직도 여성의 성적 존엄과 주체성에 대해 숙고하지 못하는가.
위문 편지 논란이 불거지자, 남초 사이트에서는 여학생의 신상 정보를 털고 온갖 디지털 성폭력을 가하고 있다. 하지만 학생을 보호해야 할 학교는 팔짱을 끼고 있다. 대신 “위문 편지의 취지와 의미가 퇴색되어 유감이며, 장병 위문의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겠다”며 문제의 본질을 비켜간 한심한 입장문만 냈다. 보다 못한 전교조가 나서 “학교는 비교육적이고 무책임하고 무능하다”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인 뒤 “위문 편지를 당장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목동의 한 학원장은 진명여고 학생들 모두를 퇴원 조치하고, 앞으로 이 학교 학생들을 받지 않겠다고 흥분했다. 그가 제대로 된 어른이라면, 학생의 실수에 분노하기 전에 위문 편지의 퇴행성에 대해 한 번쯤 숙고했어야 마땅하다. 그리고 학생을 배제와 혐오의 방식으로 공격하는 게 사교육 종사자로 온당한 태도인가.
공동체를 위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시간을 희생하는 군인들에 대해 사회는 언제나 채무 의식을 느끼고 최대한 예우해야 한다. 하지만 여고생 위문 편지 같은 퇴행적 문화는, 오히려 군 복무의 도덕적 가치를 훼손시킬 뿐이다. 빗나간 방식의 ‘가짜 위로’는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퇴색시킬 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방부가 나설 때다. 앞으로 반시대적인 위문 편지 받지 않겠다고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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