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같은 김치 냄새가 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거머쥔 영화 '버드맨'에 나오는 대사다. 배우가 한국인이 운영하는 꽃집에서 나오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 대사는 아시아 혐오라는 비판을 받았다. 나도 이 부분에서 멈칫했다. 누구나 그런 적이 있지 않은가. 낄낄거리면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내가 속한 집단에 대한 혐오의 말을 듣는 경험 말이다. 영화 '곡성'에서 어리숙한 촌사람처럼 표현된 곡성 사람들을 보고, 곡성 사람은 재밌어했을까? 대림동의 조선족 범죄 조직을 다룬 코미디 영화 '청년경찰'을 보고, 과연 조선족과 대림동 상인들도 웃었을까?
재미있자고 보는 영상이다. 피곤한 하루를 마치고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좀 웃고 싶다면, 편안한 마음으로 봐야 한다. 언제, 어디서 나에 대한 혐오 발언이 나올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조마조마해서 나오려던 웃음도 들어간다. 누군가를 조롱하거나 비하하지 않으면서 재밌는 드라마는 어디에 있는가?
다행히 넷플릭스의 콘텐츠는 양성평등을 위해 노력한 작품이 많았고, 소수인종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콘텐츠도 꽤 찾아볼 수 있었다. 2018년 넷플릭스는 오리지널에 출연했던 아프리칸-아메리칸 배우를 모아 놓은 사진을 공개하며 'Strong Black Lead' 캠페인도 진행했다. 여성 교도소의 이야기를 그린 '오렌지 이즈 더 블랙', 노년의 우정을 그린 '그레이스 앤드 프랭키', 원작을 페미니즘적으로 재해석한 '빨간머리 앤' 등은 정치적으로도 올바르면서 성공적으로 흥행한 작품이다.
그러나 최근 넷플릭스에서는 이런 기조와 무관한 작품들이 승승장구한다. 여성 혐오, 외국인 혐오, 노인 혐오, 가난 혐오까지. 모두 갖추고 있어도 잘나가는 작품 중엔 놀랍게도 한국 콘텐츠가 많다. '오징어 게임'은 국내 오리지널 작품 최초로 넷플릭스 1위 자리를 53일간 지켰고, 그 자리를 이제는 '지금 우리 학교는'이 차지했다.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고 설레는 마음으로 드라마를 틀었다가, 찬물 한 바가지를 얻어맞은 것 같은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오징어 게임'에서 한미녀는 생존을 위해 자신의 육체를 도구로 활용해 남성을 유혹한다. 위협적 상황에서 여성이 자신의 성을 도구로 남성을 이용할 것이라는 생각은 철저히 남성 중심적인 잘못된 판타지다. 더듬더듬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는 알리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편견을 강화한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어떠한가? 원작에도 없는 여고생의 출산을 넣어 느닷없이 모성애를 그리고, 학교폭력 가해자들이 피해 학생의 옷을 벗기고 그 장면을 촬영하는 장면은 지나치게 노골적이다. 좀비들이 몰려온 상황에서도 여학생들은 꺅꺅 소리만 지를 뿐, 남학생들이 싸우는 동안 누구 하나 앞서서 돕는 일이 없다. 보는 이들의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민폐 캐릭터는 핑크색 카디건을 입은 여학생이고, 폭력적인 일진은 남학생으로 그려진다.
서울신문은 지난 12월 러시아 관영방송 RT의 보도를 인용하며, 서구에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미국의 영화 대신 한국 드라마에 끌린다는 기사를 냈다. 우리나라 콘텐츠가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하지 않아 잘나간다는 것은 자랑할 만한 일이 전혀 아니다. 넷플릭스 직원들은 최근 성소수자 혐오를 개그 소재로 사용한 '더 클로저' 방영에 반대하며 일일 파업과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K드라마는 왜 거꾸로 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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