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이 영화 '코다'의 농인 배우 트로이 코처에게 남우조연상을 시상하는 순간은 올해 아카데미상 최고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나이 든 아시아 여배우가 진짜 농인 배우에게 트로피를 전달한다는 사실은 인종, 장애, 성정체성 등 다양성이 할리우드 작품에서 구색 맞추기 수준이 아닌 메인 스트림이 되고 있다는 증거로 느껴졌다.
특히 이번 수상은 장애 당사자들의 '대표성'(representation) 측면에서 의미 있다. 영화 '코다' 자체가 청인 딸과 농인 부모, 형제의 이야기다. 가장 먼저 캐스팅된 배우는 '작은 신의 아이들'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탄 농인 배우 말리 매틀린이었는데, 나머지 배역에도 농인 배우 캐스팅을 관철시킨 결과다. 그동안 장애를 다룬 영화는 꽤 있었지만 대부분 비장애인 배우가 역할을 맡았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기념비적이다. 특히 여기저기에서 청인들이 수어 예술에 뛰어들면서 정작 농인 아티스트의 입지가 좁아진다는 농인 사회의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코다'의 수상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당사자 대표성에서 중요한 건 당사자의 참여다. '코다'를 제작한 곳은 애플TV+다. '파친코'를 보기 위해 애플TV+ 앱을 다운받았을 때 두 가지가 눈에 띄었다. 하나는 에피소드 앞에 '깜박거리는 불빛에 민감한 사람에게 해로울 수 있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는 설명이 나와 있다. 당연히 시각장애인 해설 버전도 함께 있다. 시각장애, 청각장애, 지체장애 등 다양한 장애인이 사용하기 쉽게 만들어 놓은 애플의 '손쉬운 사용'이란 기능과도 맥을 같이한다.
얼마 전 국립재활원에서 장애 게이머를 위한 게임 보조기기 연구에 참여한 연구원을 만난 적이 있다. 이 연구원은 국산 게임을 연구하고 싶었지만 장애 접근성이 뛰어난 외국 게임기와 소프트웨어를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애플뿐 아니라 구글 MS 등 해외 IT기업에서는 청각장애인, 뇌병변 등 다양한 장애 당사자 직원들이 서비스 개발에 참여한다고 한다. 당사자가 직접 서비스를 만드는 가운데, 이들 IT기업이 만든 장애접근성이 전 세계 업계 표준이 되는 사례가 많다.
윤여정이 트로이 코처에게 시상하는 장면만 보면, 장애건 인종이건 다양성 측면에서 세상은 분명 진보한 것처럼 보인다. 소수민족의 애환을 다룬 '미나리'의 윤여정이 농인 배우에게 수어로 인사를 전한 후 트로피를 전한 것이니까. 그러나 시상식 아침, 서울 지하철에서는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서 장애인 국회의원이 무릎을 꿇고 보편적 이동권에 대해 호소하고 있었다. 바다 건너 영화제에서는 장애인(과 소수자)들을 서비스 소비자나 예술 참여의 당사자로 부각하고 있는 동안, 한국 이동권 시위의 문구는 미국의 1970년대 이동권 시위에서 나왔던 문구와 대동소이하다. '버스는 모두를 위한 것(Buses are for everyone).' '자유롭게 타고 싶다(Freedom rider).'
서울지하철의 엘리베이터 보급률이 90%가 넘는다지만, 장애인은 서울 외 지역에 당연하지만 훨씬 더 많다. 2022년 한국의 전국 저상버스 도입률은 28%에 불과하다. 접근권과 이동권은 복지나 시혜가 아닌 권리다. 대중교통에, 거리에, 학교에, 일터에, 소수자들이 물리적으로 이동하고 접근하며 존재할 수 있게 해 주어야 당사자가 서비스를 만들 수도 있고 콘텐츠에 참여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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