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에 엄마는 무척 부지런했다. 엄마는 가을이 되면 이산 저산을 다니며 도토리를 주워 도토리가루를 직접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그 때문에 우리 가족은 그해 겨울을 지나 다음해까지도 맛있는 도토리묵을 먹을 수 있었다. 또 이맘때 쯤, 봄이면 엄마는 여지없이 쑥을 캤다. 쑥떡을 좋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 엄마는 지천에 널린 쑥을 두고도 어쩔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장애인이 된 탓이다.
15년 전 봄, 엄마는 산책하던 길에서 쑥을 캐다가 몸이 일시적으로 마비되는 현상을 겪었다. 부리나케 달려간 병원의 의사는 엄마에게 목 디스크 진단을 내리며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사지마비가 언제 올지 모른다고 겁을 주었다. 당시 엄마는 미국에 살고 있는 여동생을 만나러 갈 계획이었는데, 의사는 엄마에게 허리 디스크 수술까지 한꺼번에 하고 병원에서 열흘 정도 쉬다가 비행기를 탈 것을 호기롭게 제안했다.
그러나 엄마는 의사가 약속한 열흘 후에 비행기를 탈 수 없었고 7개월이 넘도록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수술이 그 어느 것도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다. 엄마의 오른손은 무엇 하나 제대로 쥘 수 없었고, 두 다리로 설 수 있기까지 몇 달이 걸렸다. 결국 엄마는 2급 지체장애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 여든이 넘은 엄마는 무릎 연골이 닳아서 수술을 해야 할 판인데 그때의 트라우마로 많은 노인들이 하는 인공관절 수술도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대면 강의로 전환된 이번 학기에 내 허리는 개강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망가져 버렸다. 지방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관계로 일주일에 이틀은 5시간을 넘게 운전을 해야 하는 스케줄 덕분에 그리 된 것이었다. 약을 먹고 호전되었다 싶었는데, 코로나를 앓게 되면서 의자에 1시간을 앉아 있기가 힘든 지경이 되었다. 의사의 말이 코로나가 염증을 악화시킨 것 같다고 했다. 약을 먹으면 나아질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아직은 허리가 불편하다.
그런데 엄마는 이때다 싶었는지, 통화하면서 이제 자기 맘을 알겠느냐고 한다. 순간, 많이 찔렸다. 그동안 나는 진통제를 항상 최대치로 복용하는 엄마의 상태를 배려하지 않고 운동하라는 잔소리를 끊임없이 해댔던 것이다. 경험하지 않고 깨달았으면 좋았을 일이다.
이번 주 내내 정치·사회면을 차지하는 뉴스 중의 하나는 '장애인 단체의 이동권 시위'였다. 지금까지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장애인 단체의 시위는 많았지만 요즘처럼 관심이 집중된 적은 별로 없었다. 출근길 지하철의 시위였고, 거기에 머지않아 여당이 될 당의 대표가 시민을 볼모로 잡은 시위라며 비난한 것이 문제가 되면서 더욱 이목이 집중된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수행한 2017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중 88.1%가 질병이나 교통사고 등으로 인한 후천적 장애인이다. 지체장애인의 97%가 이에 해당한다. 이는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고 늘 변증법적으로 흘러간다는 사실이다. 나의 엄마가 장애인이 될 줄 몰랐던 것처럼 말이다. 변치 않는 진실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는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모르면 배우면 되지만 알면서 모르는 체하는 것은 가장 저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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