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를 사모하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랴마는, 막상 이름에 순우리말 '해'가 들어간 꽃은 별로 없다. 꽃과 해의 운명적 향일성을 생각할 때 꽃 이름의 백미는 해바라기다. 해에 대한 일편단심(바라기)이요, 모양마저도 태양을 빼닮았다. 영어로는 아예 '태양의 꽃(sunflower)'이다.
아직 필 때도 아닌데 웬 해바라기 타령이냐 할지 모르겠다. 참혹한 전쟁터에서 불쑥 등장하지 않았다면 무심히 잊고 지낼 꽃이었다. 전쟁과 꽃의 아이러니다. 얼마 전 매일 생중계처럼 이어지는 뉴스 속에서 순간 나를 감전시키듯 한 게 있었다.
짧은 동영상이다.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도시 거리에서 2월 말에 찍힌 것이다. 한 할머니가 총을 든 채 순찰 중인 러시아 군인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호통을 친다.
"당신들은 왜 우리 땅을 빼앗아가려 하는가. 당신 군복 주머니에 해바라기씨나 넣어둬라. 그럼 네가 이 땅에 쓰러진 뒤 그 씨앗이 자라 해바라기꽃을 피울 것이다."
공포 속에서도 어떻게 이런 은유적이고 문학적인 표현이 나올 수 있었을까, 난 놀랐다. 할머니의 이 한마디는 러시아의 그 어떤 막강한 포탄보다도 강력했다. 많은 지구촌민들이 해바라기를 들고 러시아를 규탄했다.
해바라기에는 우크라이나의 비극적 현대사가 압축돼 있다. 해바라기가 나라꽃인 이 나라는 전 세계 해바라기씨 수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해바라기 천국이다.
나이 드신 분들은 이 영화를 기억할 것이다. 소피아 로렌이 주연한 이탈리아 영화 '해바라기'다(1970년,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
2차 세계대전 중 히틀러에게 동조한 무솔리니에게 징집돼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떠난 남편이 전쟁이 끝나도 돌아오지 않는다. 아내는 남편 사진 한 장만을 들고 홀로 현지 격전지에 가서 남편을 찾아 헤맨다.
해바라기가 끝없이 펼쳐진 들판에서 아내는 이런 말을 듣는다. "독일군은 저 해바라기밭 아래 포로들이 직접 자기 무덤을 파게 했어요. 아마 당신 남편도 저 해바라기 아래 묻혔을 겁니다." 군인들의 붉은 피 위에 해바라기가 자란 것이다.
두 남녀는 다시 만났지만 다시 헤어진다. 전쟁이 안겨준 비극이다. 기차는 떠나고 구슬픈 주제곡 '사랑의 상실(loss of love)' 선율 속에 바람에 너울대는 해바라기 평원이 펼쳐지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그로부터 80년이 흘렀다. 우크라이나 할머니는 이번에는 침략자인 러시아군을 향해 "너희는 이 땅에 죽어 해바라기의 거름이 될 것"이라고 한다. 우크라이나 해바라기는 이토록 슬픈 꽃이다.
역사는 이리도 무심하고 무참하게 반복되는가. 20세기의 광기도 아닌 21세기 대저 문명의 시대에 탱크를 앞세운 전쟁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게임이 아니다.
이제 곧 이 땅에도 해바라기가 피어날 거다. 해바라기를 볼 때마다 우크라이나의 할머니가 생각날 거다.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빗돌을 세우지 말라/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함형수, '해바라기의 비명-청년 화가 L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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