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프로필 촬영 일정을 잡았다. 보통 100일 전에들 예약한다는데 나는 20일 후로 잡았다. 이렇게 한 것은 5월이 되면 이런저런 일이 많아 어쨌든 4월에는 찍어야 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사진을 위해 일부러 몸을 만들지 않겠다는 생각이 컸다. 옷도 평소 운동복과 요가복을 입고 찍을 예정이다.
바디프로필을 찍기 위해서는 몸을 '만들어야' 한다. 운동은 물론 식단도 조절해야 한다. 심지어 촬영 전날에는 물도 마시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내가 너무 젊지 않다. 그러다 병원 신세도 질 수 있다. 젊지 않은 내가 바디프로필을 찍기로 한 것은 바로 '젊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올해 60세가 됐다.(주민등록과 실제 나이가 1년 차이가 나고, 앞으로 만 나이가 도입될 터이므로 나는 앞으로 60세를 두 번 더 맞이하겠지만) 앞으로 내 몸은 더 병들고 늙어 갈 일만 남았다. 따라서 오늘이 제일 젊고 좋은 날이다.
사실 나는 25년째 운동을 했다. 25년 전 3월, 출산한 지 3개월 만에 나는 지팡이를 짚고 수영장에 갔다. 의사는 어긋난 엉치뼈는 다시 돌아오지 않으므로 평생 수영을 해서 근육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의사 말에 고분고분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수영장으로 갔다. 의사는 등산과 헬스를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어느새 지팡이를 내던지고 걸었고, 제주 올레길도 며칠씩 걷고, 지리산 종주도 했다. 헬스클럽에서 기구 운동도 시작했다.
시골로 들어와 살면서도 거의 매일 새벽 헬스와 수영을 했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지고, 나의 운동 생활도 끝나버렸다. 스포츠센터가 휴관했기 때문이다. 이후 생활이 편했다. 무엇보다 새벽에 일어나지 않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몇 달 지나자 허리와 다리 등이 아팠다. 다시 헬스를 시작했다. 몸을 회복시키기 위해 개인 지도를 받았다.
그즈음 코로나로 외부 활동이 줄어들자 연예인들부터 일반인까지 바디프로필 사진이 유행이었다. 슬쩍 마음이 동했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접었다. 그러다 해가 바뀌고 60세가 된 올 초, 더 나이 들기 전에 내 몸을 기록하고 싶어졌다.
아끼지 않고 몸이 몸을 내준 덕분에 나는 살았다. 때때로 아픈 몸들을 지나기도 했지만, 덕분에 뚜벅뚜벅 걸어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나는 내 몸을 쓰는 데 열심이었지, 내 몸을 살피는 일에는 인색했다. 아플 때 아픈 구석만 들여다볼 뿐이었다. 시골 생활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몸을 쓰면서 살고 싶기 때문이었다. 내 손은 흙을 만지면서 거칠어졌고, 내 다리는 책방과 마당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굵어졌다. 내 몸이 흙과 함께 있어 준 덕분에 때때로 복잡하고 지친 내 정신이 쉴 수 있었다. 그러니 내 몸이 얼마나 고마운가.
그런데 그만 코로나에 확진되고 말았다. 격리 기간과 이런저런 일로 운동을 하지 못하게 되자 슬쩍 포기했다. 어차피 누구에게 말한 것도 아니니 안 하면 그만이었다. 그러고 한 달쯤 지나자 저 밑바닥에서 다른 내가 속삭였다. 네 몸은 지금이 제일 예뻐. 젊은 시절에도 예쁘다 소리를 듣지 못한 나는 그만 예쁘다는 소리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굳이 몸 만들려 애쓰지 말고, 평소 몸을 찍자. 은근 좋아하는 눈치를 보이던 내 몸이 한마디 한다. 그래도 뱃살을 좀 가려야 하니 한 끼쯤은 굶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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