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이 되는 말을 당사자가 원할 때 해준다면 이는 조언, 충고라고 말한다. 하지만 본인이 원하지 않을 때 하는 말은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잔소리라고 폄훼된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미성년 자녀의 대부분이 부모에게 조언을 스스로 요청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 부모가 아이를 위해 하는 말의 대부분은 잔소리가 될 수밖에 없는 독특한 구조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부정적인 의미로만 알려진 잔소리는 아이의 성장에 과연 도움이 될까? 답은 의외로 명확하다. 부모의 잔소리는 아이의 올바른 습관 형성에 분명히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단,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반복, 무시, 의심, 강요, 위협적인 요소가 포함되지 않아야 한다. 이런 부정적인 방식의 잔소리가 누적되면 아이의 정서나 부모와의 유대관계를 망칠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최근 '잔소리 없는 날(안네마리 노르덴 작)'이라는 책을 아이들과 읽게 되었다. 평소 부모의 잔소리가 불만인 주인공 푸셀은 잔소리 없는 날을 제안한다. 부모가 그 부탁을 수락한 뒤 푸셀의 다양한 돌발행동들로 인해 겪게 되는 당황스러운 사건들로 이루어진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자마자 아이들도 내게 '잔소리 없는 날'을 강력하게 요구해왔다. 우리 집도 5학년 남자아이 둘을 키우고 있기에 평소 잔소리가 적지 않은 편이었다. 잠시 고민을 한 뒤 하루 정도는 괜찮겠다 싶어 흔쾌히 승낙했다.
방법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일단 잔소리를 하거나 눈빛이나 손짓으로 지시를 하지 않는다. 위험하거나 나쁜 짓이 아닌 경우에는 부탁을 다 들어준다. 이 두 가지만 약속한 일요일 하루 동안 부모가 지켜주면 되는 것이다.
막상 잔소리 없는 날이 시작되자 약속을 지키는 것이 만만치 않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아껴야 했고 대화를 하더라도 방법을 조금 바꿔야 했다. 그와 반대로 아이들은 물 만난 고기였다. 일어나는 것도 씻는 것도 먹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평소 엄격하게 제한했던 스마트 기기로 게임을 하루 종일 실컷 할 수 있었다. 잔소리가 잦았던 부모 입장에서는 눈뜨고 보기에 쉽지 않은 상황의 연속이었다.
그렇지만 길게만 느껴졌던 잔소리 없는 날은 어른과 아이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첫째, 부모가 평소 얼마나 어떻게 잔소리를 해왔는지 스스로 진단할 수 있었다. 둘째, 아이들이 자유시간을 통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함으로써 그동안 쌓아왔던 스트레스를 풀 수 있게 되었다. 셋째, 아이에게 자유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른다는 점을 스스로 깨닫게 할 수 있었다.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성공적인 결과를 낳은 실제 사례가 있다. '아이가 공부에 빠져드는 순간'을 쓴 유정임 작가는 서울대와 카이스트에 자녀를 입학시킨 워킹맘으로도 유명하다. 그녀의 양육법 중에 독특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시험이 끝난 뒤에 주어지는 '폐인 데이'이다. 아이들에게 잔소리 없는 날처럼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완벽한 자유 시간을 준 것이다. 자녀들은 이런 날을 기다리면서 힘들었던 공부를 이겨냈다고 한다.
그리 비싸지 않은 수업료로 대단한 효과를 얻은 셈이다. 투자 대비 소득이 이 정도 수준이라면 '잔소리 없는 날'을 한 번 정도는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